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그러니까 밤바다는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이거다. 한 번 상상해보라. 으슥한 밤, 이곳은 늦여름의 어느 섬. 당신은 오른편에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아무리 힘차게 걸어도 발소리는 나지 않는다. 파도는 일정한 숨을 내뱉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육지고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만 하늘과 바다. 둥근 지구를 굴릴 때마다 발목을 파고드는 모래는 서늘하다.

바다는 지구가 가진 것 중 가장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 한낮이면 볕을 제 몸으로 감싸며 눈부시게 하얀빛을 낸다. 에메랄드나 사파이어, 온갖 푸른 보석을 담은 물은 어떠한가. 손에 쥐어서는 결코 그 빛깔을 볼 수 없다. 물결 아래로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생물들이 헤엄치고, 바다 깊은 곳에서는 인어공주가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이 되면, 바다는 저의 가장 무서운 얼굴을 내민다. 볕이 들지 않는 수면은 그 아래를 가늠하기 어렵다.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많은 물이 있는지.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한 백상아리는 한창 피 튀기는 먹이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심해의 으스스함. 어딘가에 갇힌 듯 답답하다. 이곳의 괴생물체들은 오늘 밤 당신의 꿈자리를 두드릴 예정이다.

사실 이 바다는 우리와 닮았다. 익숙한 공포다. 상어들의 먹이 싸움처럼 피 튀기는 경쟁은 이 사회에도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답답함과 불안감은 심해에 빠진 느낌이다. 우리는 마치 바다처럼 꺼낼 수 없는 사정을 잔잔한 수면 아래 감추며 산다. 그러나 인생의 파도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도 쉽게 장악해 버린다. 그렇게 물살을 헤치는 상상을 하자면, 어느 공상과학 영화처럼 20여 년의 시간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어머나. 그렇다면 우리는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이 바다를 탈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다행히도 발을 딛는 이 섬만은 여러분의 자유다. 이곳은 늦여름의 어느 섬.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기묘한 좌표. 나의 섬에는 흐릿한 도시가 있고, 가끔 진한 추억의 불빛이 흐른다. 들여다보면 모닥불 색의 안주를 피워둔 사람들이 출렁이는 술잔을 기울인다. 따뜻한 말과 온기. 공포의 거대함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는 이 작은 모닥불에 기대어 바다로 나갔다가 비바람을 맞으면 다시 돌아온다. 이곳에서 나는 배를 짓고 선원을 모아 또 앞으로 간다.

이 글에서, 다른 섬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무시무시한 바다 앞을 계속 맴돌 수도 있고, 새로운 섬으로 훌쩍 떠날 수도 있다. 모든 선택이 자유다. 그러나 영원한 탈출구는 장담할 수 없다. 당신은 그저 현재의 섬을 벗어나 새로운 섬으로 갈 뿐이며 그렇게 마주한 바다에서 또 익숙한 공포를 느낄 것이다. 정말이지 지겹고 싫증이 나겠지만 안타깝게도 영원한 육지는 없다. 지구에는 언제나, 70%의 바다가 흐르고 있으니까.

공도영(철학 15)
공도영(철학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