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프리뷰 전시와 경매현장 누구나 관람 가능
스페셜리스트, 경매 기획부터 전반적 업무 도맡아

 

지난 4일 서울옥션(대표이사 이옥경) 강남센터에서 ‘제153회 미술품 경매’가 열렸다. 1부에는 근현대미술품, 2부에는 고미술품이 출품됐다. 기자는 프리뷰 전시부터 경매 현장까지 차분함 속에 긴장이 흐르는 2차 미술시장을 스케치했다.

프리뷰 전시, 일주일 동안은 모두의 것
지난달 28일부터 경매 당일까지 약 일주일간 서울옥션 지하에서 프리뷰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근현대미술품이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을 기다렸다. 송보림 스페셜리스트는 전시장에서 작품해설을 도왔다. 그는 이번 경매에서 주목하고 있는 김환기의 <백자와 꽃>을 설명했다. “<백자와 꽃>은 김환기 선생님이 굉장히 아끼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고, 고목과 꽃의 붉은색이 항아리에 살짝 가미되면서 감각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됐다.” 그는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작가의 작품 제작과정까지 곁들여가며 경매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 줬다. 때로는 희귀한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 매스컴이 작품을 전파에 태우기도 한다. 지하 4층 고미술품 전시장에서 KBS 1TV 취재팀이 <백자불상>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처럼 프리뷰 전시는 컬렉터만이 아닌 모두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단순히 ‘전시’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다. 작품 옆에는 설명과 더불어 작품의 추정가를 적어놓았다. 이 가격은 작품을 내놓은 위탁자와 협의하고 전문가가 작품을 감정하면서 매겨진 시장 가치이다. 정태희 경매사는 “컬렉터가 구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시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추정가의 역할을 설명했다. 또 “대부분 추정가 범위 안에서 낙찰이 결정나지만 경합이 발생하면 추정가보다 높게 작품이 거래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경매, 찰나의 순간 오르는 가격
정갈한 옷차림의 인원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경매도 프리뷰 전시처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직접 참여하는 현장 응찰자는 저마다 번호가 적힌 패들을 들고 있었다. 6층에 도착하자 깔끔한 경매장이 보였다. 양쪽 벽면에는 프리뷰 전시에서 본 작품 중 12점이 걸려있었다. 잘 차려진 전시장에서 봤던 작품을 사람 가득한 경매장에서 보니 이곳이 ‘시장’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오후 4시, 김현희 경매사가 낙찰봉을 두 번 두드리며 근현대미술품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높은 목소리 톤으로 경매에 흥미를 불어넣고 “제가 눈이 작아도 여러분과 계속 아이컨택을 하며 진행하겠다”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조율하기도 했다. 경매는 한 작품 당 약 1분여로 빠르게 진행됐다. 경매사에게는 경매의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 경합이 붙은 응찰자를 번갈아 가리키며 값을 부르도록 유도했다. 응찰자가 값을 부르기를 고민하면 경매사는 때에 따라 다르게 대처했다. “천천히 고민하라”며 응찰자의 여유를 찾아주기도 했지만, “빠른 결정을 부탁한다”며 응찰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정 경매사는 “짧은 순간 응찰자와의 눈 맞춤에서 가격을 더 부를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확신을 건네야 하고, 이 확신은 작품을 정확히 숙지해야 가능하다”며 기자에게 현장 설명을 도왔다. 경합이 끝날 때면 박수를 치며 모두가 낙찰을 축하했다.

현장 응찰 외에도 전화나 서면으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경매장 한쪽에 앉은 스페셜리스트들은 전화 및 서면 응찰자를 대신해서 패들을 들었다. 전화 응찰은 스페셜리스트가 전화기 너머 컬렉터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경매에 대리 응찰하는 방식이며, 서면 응찰은 경매 전에 낙찰 희망 가격을 서면상으로 계약하면서 참여하는 방식이다. 현장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현장 및 전화 응찰자와 달리 사전 계약에 의존하는 서면 응찰자는 같은 가격으로 경합 상황이 이뤄질 때 응찰 우선권을 부여받았다.

쉬는 시간 후에는 음정우 경매사가 고미술품 경매를 진행했다. 그는 작품을 설명하며 관객의 흥미를 돋웠다. 정 경매사는 “시작가를 부르기 전에 짧게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그들이 작품을 상기하는 걸 돕는다”고 말했다. 고미술품 경매에서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는 가장 경합이 치열했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특히 경매사의 호가 조절이 인상적이었다. 경합을 읽은 음 경매사는 500만 원 단위였던 호가를 1000만 원으로 조절했고 결국 낙찰가는 순식간에 2억 5000만 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경매 뒤풀이
2차 시장을 지휘하는 경매사는 곧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경매를 진행하는’ 업무를 더한 스페셜리스트인 것이다.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에 대해 정 경매사는 “경매 기획, 가격 협상, 작품 선별, 도록 제작, 프리뷰 전시, 경매 진행, 결과 공시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를 발굴해 기획 경매에 올리거나, 국내 시장의 작가를 해외 경매에 선보이는 역할도 한다”며 2차 시장의 유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설명했다.

이날 경매는 70%의 낙찰률을 기록했고 당일 최고가 미술품인 김환기의 <산>은 14억 원에 서면 응찰자의 것으로 돌아갔다. 경매를 마치고 익명의 참여자는 “미술품 감상이 취미여서 경매를 항상 눈여겨보고 있으며 이번에 매력적인 작품이 많이 나와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매장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각자 달랐다. 그들은 관심 있는 미술품이 경매에 오르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패들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미술품을 사고파는 것으로 이어지며 이를 문화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프리뷰 전시장에서 본 김환기의 '백자의 꽃'
프리뷰 전시장에서 본 김환기의 <백자와 꽃>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되는 모습.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