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수빈 기자 (csubingood@skkuw.com)

가위눌림은 렘수면으로 인한 생리현상
한국, 수면시간 OECD 국가 중 꼴찌

 

대한민국은 수면 후진국이다.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학생들, 늦은 시간까지 회식이나 야근을 하고도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직장인들, ‘잠은 죽어서 자라’고 외치는 사회 분위기. 이렇듯 잠은 사람들의 우선순위 밖에 위치한다. 일생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수면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피곤해도 밤에 잠들 수 없는가? 아무리 많이 자도 피곤한 느낌이 드는가? 언제 어디서든 머리만 닿으면 잘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수면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수면에도 단계가 있다
수면은 크게 렘수면과 논렘수면으로 나눌 수 있다. 렘수면(REM sleep)의 렘은 급속 안구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수면 중에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꺼풀 아래에서 안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렘수면 단계에서 뇌파는 각성 상태의 뇌파와 유사하지만, 근육은 기본적으로 마비돼있다. 즉 신체는 잠이 들어있지만, 뇌는 깨어있는 상태다. 따라서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은 대부분 렘수면 때이다. 흔히 ‘가위에 눌렸다’고 하는 것 역시 렘수면 중에 어떤 이유로 의식은 깨어 있지만, 근육이 경직돼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생리현상이다. 한편 논렘수면(non-REM sleep)은 ‘렘수면이 아닌 수면’을 뜻한다. 논렘수면은 수면의 깊이와 뇌파의 상태를 기준으로 다시 4단계로 나뉜다. 먼저 1단계는 각성 상태와 수면 상태 사이의 과도기 단계로 선잠이 든 상태이다. 이 단계에서는 쉽게 깰 수 있으며, 눈과 근육은 여전히 움직인다. 2단계는 좀 더 깊이 잠이 든 상태로, 눈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다가 멈추게 된다. 마지막 3~4단계는 ‘서파 수면 단계’라고도 부르며, 이 단계에서 뇌는 느리고 진폭이 큰 뇌파를 생성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잠자리에 들면 50~70분 내로 렘수면 상태에 접어들고, 본격적으로 잠을 자면 논렘수면 상태로 들어간다. 그 후로는 약 90분 주기로 논렘수면과 렘수면이 반복된다. 수면 전반부에는 서파수면이, 후반부에는 렘수면이 더 길게 나타난다. 이 주기를 통해 적당한 시간대에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가정해보자. 잠을 자기 시작하면 먼저 수면 전반부에 주로 출현하는 서파수면이 등장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새벽녘은 렘수면이 빈번하게 출현하는 시각이므로 새벽 5시에 잠들자마자 렘수면도 무대에 오르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서파수면과 렘수면이 경쟁을 벌여 서로의 수면을 억제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운 수면의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수면 단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숙면을 부르는 중요한 법칙이다.


우리 몸을 지켜주는 수면
수면은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먼저 수면은 육체적인 피로를 회복하게 한다. 뇌가 수면 상태에 접어들면 우리 몸의 나머지 부분도 움직임이 느려지며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에 대해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수면은 자동차의 ‘시동’으로 비유할 수 있다”며 “자동차의 시동처럼 수면은 우리 몸을 끄고 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시동을 계속 켜두거나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면 자동차가 고장 날 것”이라고 말하며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수면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세포의 신진대사를 돕는 등 우리 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수면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뇌는 일을 할 때 치매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성분을 축적하는데, 이는 깊은 수면 중에 제거된다. 즉, 충분한 수면을 통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뇌는 깨어 있을 때 오감을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수면 중에 정리하고 장기 기억으로 저장한다.

혹시 나도 수면장애?
수면장애란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음에도 낮 동안에 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수면 리듬이 흐트러져 있어서 잠자거나 깨어 있을 때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포함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에 7시간 41분을 잤다. 이는 OECD 평균 시간인 8시간 22분보다 41분 정도 부족한 수치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수면장애로 치료를 받은 경우가 2015년 45만여 명에서 2017년 51만여 명으로 3년 사이 13%나 증가했다. 단순히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을 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수면 의학회에서 작성한 ‘수면장애 국제분류(ICSD)’에서는 85가지의 수면장애를 정의하고 있다. 85가지의 수면장애는 △불면증 △수면 관련 호흡 장애 △중추성 과다수면증 △하루 주기 리듬 수면-각성 장애 △사건 수면 △수면 관련 운동장애 △독립적 증상 △기타 수면장애의 8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가장 흔한 수면장애인 불면증은 잠을 잘 수 있는 적절한 기회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면이상을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면증은 환자 자신이 느끼기에 잠이 들기 어렵거나, 수면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수면 시간이 짧다고 느끼거나,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다고 느끼는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혹은 단독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수면장애인 하지불안증후군은 수면 관련 운동장애로 분류되며, 자거나 자려고 애쓰는 동안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다리를 움직이는 증상을 말한다. 하지불안증후군에 걸리면 잠을 자려고 누우면 다리 안쪽으로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이 들어 다리를 계속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이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된다.


수면장애는 치료의 대상
신 교수는 “수면장애를 겪으면 수면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며 “수면 전반부의 서파수면 단계에는 주로 육체가 회복되고, 후반부의 렘수면 단계에는 정신이 회복된다. 그런데 수면 부족으로 수면의 사이클이 무너지면 육체 또는 정신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라고 수면장애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면장애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후에 당뇨나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수면장애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주은연(의학) 교수는 수면장애에 대한 20대 청년층의 인식을 지적했다. 그는 “20대 청년층은 모든 연령층을 통틀어 가장 잘못된 수면습관을 가지고 있다”며 그 이유로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던 학창 시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서 20대들의 수면 패턴이 망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 교수는 “청년 세대는 수면장애의 문제가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수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수면습관을 교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90분 주기로 논렘수면과 렘수면이 반복되는 수면의 주기를 나타낸 수면곡선그래프.
90분 주기로 논렘수면과 렘수면이 반복되는 수면의 주기를 나타낸 수면곡선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