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매체
생활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종이공예
페이퍼리스(Paperless) 시대가 도래했다. 마트에서는 전자 영수증을 발급하고,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손에 종이와 펜 대신 태블릿PC와 노트북을 쥐고 있다. 하지만 종이는 예술가에게 필수적인 재료다. 한지공예부터 북아트까지 다양한 예술품을 탄생시키며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종이의 탄생에서 위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기술이 발전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종이의 발명이다. 종이는 식물의 섬유소를 풀어서 얇고 평평하게 만든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됐으며 채륜(蔡倫)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종이 제작법을 체계화하고 새롭게 개량해 확산시켰다. 종이가 없던 서양에서 오랫동안 기록 매체로 사용된 것은 파피루스(Papyrus)와 양피지였다. 파피루스는 Paper의 어원이지만 제지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종이의 기원으로 볼 수 없다. 중국의 제지술은 6세기경 우리나라에 전래됐고, 8세기에는 이슬람을 통해 서방으로도 전파됐다. 종이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9세기에 제지 기계가 생겨나고 부터다.
최근에는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끊임없이 종이의 종말이 예견되고 있다. 기업은 종이문서를 전자문서로 바꾸면서 종이 없는 ‘페이퍼리스’ 사무실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퍼 엘레지』의 저자 이언 샌섬은 종이의 죽음이라는 말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이는 우리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며 종이를 대신해서 나오는 물건들은 오히려 종이를 흉내 내고 있다. 아이패드는 공책을, 스마트폰은 수첩을 닮았기에 종이의 이미지는 사방으로 확산되며 여전히 우리가 읽고 쓰는 방식을 결정짓는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국내 종이회사 ‘두성종이’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13%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산업지 △식품용지 △포장용지 등 종이의 새로운 용도가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다.
종이의 품으로 달려간 예술가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세기 후반에 최초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발달시켰다. 그가 노트에 남긴 4000장이 넘는 스케치는 건축·과학·수학·음악·조각·해부학 등 분야를 넘나든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종이는 예술적 표현을 위한 매체로 사용돼왔고, 많은 작가와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스케치한다.
종이는 더 강력한 예술적 표현 매체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무토막이나 대리석과 다르게 되풀이해서 고칠 수 있으며 유연성을 지녀 쉽게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앤 버밍엄은 『그림은 배운다는 것』에서 종이가 위대한 예술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매체였을 뿐 아니라, 아마추어 미술이나 DIY도 종이 덕분에 발달했다고 말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평론가는 20세기 초에 종이 콜라주 기법이 도입되면서 예술이 단순히 장식적 역할을 하며 현실을 반영하기만 하는 상태에서 해방됐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스페인 화가 후앙 미로는 그림을 오려내면서 당시 주류였던 회화에 도전했다. 피카소 또한 종이를 종이에 붙이는 작업을 통해 회화의 화면과 공간이 특권적이라는 인식을 비판했고, 종이 자체의 성질에 주목했다. 이러한 종이작업은 만드는 과정을 강조하고 예술가가 작품에 직접 참여한다는 느낌을 준다. 콜라주와 같이 종이의 입체성을 이용한 시도는 현대미술과 조각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종이는 접근성이 좋아 근대 6.25전쟁으로 인한 생활고 속에서 유일하게 작품 생활을 가능하게 해줬다. 당시 화가들은 캔버스와 물감이 없어 쉽게 구할 수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특히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가 가난 때문에 택한 종이작업은 이후의 리넨 캔버스와 면 캔버스 작품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처음에 신문지로 작업을 시작해 나중에는 갱지·공책·포장지 등 다양한 종이로 확장했는데, 종이의 질감과 만난 자연스러운 번짐은 독특한 동양 추상화를 만들어냈다.
종이와 공예의 만남
종이공예는 종이를 오려서 접거나 붙이거나 엮어서 여러 가지 기물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민속공예의 한 형태다. 국내 종이공예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발전해왔다. 고구려의 고국원왕릉과 약수리고분 벽화의 행렬도에는 *등롱을 어깨에 멘 등롱수들이 그려져 있으며 집안 4호, 5호 무덤 벽화에는 소의 탈을 쓰고 춤추는 인물들이 묘사돼 있다. 고려시대에는 연회장을 금종이로 만든 꽃으로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종이가 생산됐고, 통치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을 충족시키기 위해 중앙관청 수공업장에 종이공예장 공인들을 집중시켜 공예품을 만들게 했다. 종이공예품은 농민들의 가내수공업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한지공예가 발달했다. 조선시대 한지제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다른 수공업분야 중에서도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에 따르면 한지공예는 한지로 일상생활의 소도구를 만들거나 사용하면서 형성된 공예다. 이는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겨 되풀이 사용하던 선조의 생활 정신과 검소한 마음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지를 잘게 찢어 물에 불려 섬유질이 풀어지게 한 다음 점성을 가진 풀과 섞어서 일정한 틀에 부어 넣거나 덧붙여 만드는 ‘지호공예’는 그 형태와 용도가 다채롭다. 지호공예품으로는 주로 상자·소반·표주박 등의 생활용품과 닥종이 인형, 종이탈 등이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며 가볍고 튼튼해 생활용품이 귀했던 농가에서 가장 흔하게 썼던 한지공예 기법이다.
누구나 종이예술가가 될 수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것 중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책이다. 종이 기반 아트북 페스티벌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매년 1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관계자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아트북 페어이자 독립출판물 판매시장으로, 개인이 만든 책이 부스를 통해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종이책이라는 매력적인 입체는 사람들을 계속 끌어당길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북아트를 통해서는 누구나 쉽게 책을 만들고 예술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덕에 교실 안에서도 활용된다. 북아트 프로그램은 북미와 유럽권에서 이미 학교 교육과정과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으며, 국내에 소개되면서 교육적 효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종이를 오려서 만드는 ‘페이퍼 커팅’ 또한 인기 있는 공예 기법이다. 러시아의 사진작가 니콜라이 톨스토이는 동물 모양의 아웃라인을 커팅한 종이를 자연에 덧대고 찍은 사진을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게재한다. 그는 종이라는 친숙하고 간단한 재료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색다르게 바라본다. 종이는 다양한 예술적 매체로 활용되며 우리에게 가치를 전해주고 있다.
*등롱=종이로 만든 등으로, 등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데 쓰는 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