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나영 기자 (skduddleia@skkuw.com)

 

비건, 삶의 다양한 방면에서 비거니즘을 실천
황 대표 “비거니즘,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2019년을 ‘비건의 해’로 꼽았다. 2019년에는 비거니즘이 주류로 편입되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사회에서 비거니즘의 확산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Begin Vegan
『베지테리안 국내외 채식주의 산업 시장 보고서(2019)』 (이하 베지테리안 보고서)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완전 채식만 하느냐, 약간의 육식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7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비건은 채식주의자 중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모든 동물성 음식을 거부하고 식물성 음식만 섭취한다. 비건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글자를 따와 만들어진 단어다. 이들은 육류와 생선은 물론 동물의 알, 꿀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도 거부한다. 비건은 단순히 음식 섭취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있어 실크나 가죽같이 동물을 원료로 한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돌고래 쇼나 동물원 등 동물을 착취하고 억압하거나 동물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 역시 일절 거부한다. 이런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비건의 생활양식이나 철학을 비거니즘이라고 일컫는다.

왜 비건이 되는가
한국비건인증원 황영희 대표에 따르면 비건을 선택하는 동기는 크게 △개인의 건강 △동물 복지 △환경보호를 위해서로 분류할 수 있다. 황 대표는 “비건을 선택하는 데 있어 하나의 요인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동물이 억압되고 착취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7년도 우리나라 국민의 85.3%는 농장 동물의 복지 향상 필요성에 대해 ‘현재보다 향상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실제 농장 동물은 축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 상태가 아닌 부자연스러운 좁은 공간에서 성장하는 등 착취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지테리안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병아리가 사육장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서로를 쪼지 않도록 농장주는 마취 없이 병아리의 부리를 자른다. 보고서는 이를 인간의 손톱을 마취 없이 뽑는 것과 같은 고통이라고 제시했다.

동물을 사육하면 환경 역시 파괴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달 8일 ‘토지사용과 기후 변화’ 보고서 발표를 통해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서구식 섭취가 지구 온난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베지테리안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가축 △가축 사육을 위해 숲과 초원을 태우는 행위 △축산폐기물은 매년 1억 1000만~1억 6000만 톤의 메탄가스를 방출한다. 또한 가축을 기르는데 이산화탄소, 프레온 가스 등도 발생해 환경을 파괴한다.

가축을 기르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인간은 동물을 사용한다. 동물보호법 제23조 동물실험의 원칙에 따르면 동물실험은 인류의 복지 증진과 동물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실시해야 한다. 또한 동물보호법 제23조 제2항은 동물실험을 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대체할 방법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동물실험에 사용된 실험동물 수는 총 372만 마리로 2013년 197만 마리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

아직 다가가기 힘든 비건
우리 학교 전예진(미디어 18) 학우는 “완전한 채식(비건)을 했을 때 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충분히 섭취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영국 옥스퍼드대 산하 유럽 암·영양 전향적 연구팀(EPIC)은 “채식주의자가 육류를 섭취하는 사람보다 뇌졸중 위험이 20% 높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정확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콜레스테롤 수치나 비타민 B12와 같은 영양소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뒷받침했다. 반면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윤미은 교수는 채식하더라도 충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비건이라고 영양 불균형과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모두 높은 것은 아니다. 다만 비건이 두부 등 한정적인 식품만 섭취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건의 경우 식품에 어떤 영양소가 있는지 공부하고 영양 균형을 맞춰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비건인 부모가 아이를 비건으로 키우는 ‘비건 육아’에 대해 윤 교수는 “고기보다 채소는 식감이 거칠어 아이들이 잘 씹지 않거나 잘 먹지 않는다. 이는 소화불량이나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때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하게 식품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비건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 부족은 비건을 힘들게 한다. 낫 아워스 신하나 대표는 “비건이라고 밝히면 식당에서 친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비건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냐고 따졌던 사람도 있었다”라며 그의 경험을 토로했다. 윤 교수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개인이 비건을 선택했을 때 이를 뒷받침해주는 환경이 돼야 한다. 예를 들어 비건이 식당에 갔을 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씩 바뀌는 사회
베지테리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의 채식 인구는 약 100만 명이며 이 중 비건 인구수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비건 식품을 비롯한 비건 제품의 시장 규모는 이보다 더 크게 잡힌다. 일반 소비자도 비건 제품이 윤리적이며 품질이 좋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기업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제품을 출시하는 추세다.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 제품 인증을 해 제품을 만들 때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음을 나타내며 비거니즘을 실천 중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6.3% 성장하고 있다. 국내 헬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은 지난해 1월~8월의 비건 화장품 매출은 2017년 대비 70% 증가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작은 노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비거니즘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동물성 식품을 조금 먹었다고 해서 비건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세끼 중 한 끼만 동물성 식품을 제외하고 먹어도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이며 작은 행동이라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건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변화를 기대 할 수 있지만 이를 강요해선 안 된다. 황 대표는 “비거니즘은 개인의 신념이다. 이를 완벽히 강제하고 의무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글들이 담배 생산을 위해 실험당하고 있다.
비글들이 담배 생산을 위해 실험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