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웅식 기자 (w00ngsik@skkuw.com)

감성스케치 - 'BARBARA KRUGER:FOREVER'

글씨로 채워져 관객을 압도해
나가는 순간에도 작가의 질문 만나

 

글씨에 압도당하다

'Untitled(Forever)'(2017).ⓒ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Untitled(Forever)'(201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6개의 전시 공간 중 첫 번째 전시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정면을 바라보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흰색 바탕의 검은 글씨와 검은 바탕의 흰 글씨가 관람객을 압도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벽면의 ‘YOU’라는 글씨와 타원형 볼록 거울 이미지 속의 텍스트는 그 크기와 형태로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전시실 전체를 활용한 이 공간은 ‘영원히’라는 부제를 가진 설치예술 작품이다. 작가는 각각의 벽면에 다양한 메시지를 새겨 넣었다. 작가는 볼록 거울 이미지 안에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의 구절을 인용해 서구의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또 작가는 바닥과 벽면에도 메시지를 새겨 넣었다. 바닥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구절을 인용하고, 양 벽면에는 다양한 사회 이슈를 새겨 넣었다. 바바라 크루거는 이러한 텍스트를 이용한 설치 예술을 통해 시각적 충격을 주고 동시에 사회 문제에 대해 사고하도록 유도한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좁은 문을 통과해 만난 다음 전시실은 회색 조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구성돼있다. 그곳에는 처음으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바바라 크루거를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그는 당시 미국의 낙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1989년 4월 9일 바바라 크루거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낙태법 철회 시위에 참여한다. 그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결정할 수 없는 나라 미국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낙태의 권리가 여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속의 태아를 살리고 죽이는 일이 주류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바탕으로 그의 대표작인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 Your body is battleground)>를 만든다.

작가는 당시의 대중매체에서 사용하는 ‘Who’, ‘You’, ‘I’와 같은 대명사는 성별이 남성으로 고정돼있었다고 생각했다. 바바라 크루거는 대명사의 주체를 여성으로 바꿔 생각하고 텍스트를 구성한다. 결국 바바라 크루거는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 Your body is battleground)>를 통해 남성중심의 미국 사회를 비판한다.
 

소비사회에 의문을 던지다
바바라 크루거는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 전시회의 흐름을 따라 작은 전시실에 들어서면 녹색, 빨강, 노랑, 파란색 색조의 재킷 안감 사진 위에 ‘Face it’이라고 적혀있는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좌측부터 ‘이 값비싼 옷은 당신을 부유하거나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이 훌륭한 의상은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사람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멋진 외투는 터무니없게 비싸다’, ‘이 옷은 당신을 최소 20년은 젊어 보이게 한다’고 적혀 있다. 작가는 이 4개의 작품을 통해 대중매체와 과장된 광고가 만들어낸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Face it'(2007).ⓒ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Face it'(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새로운 매체와 만난 목소리
커튼을 열고 들어간 정사각형의 전시실 네 면에서 각각 상영되고 있는 다른 동영상은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크루거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배경음악과 편집을 사용해 4가지 영상이 유기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4개의 면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해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영상 연출을 통해 새로운 대중 매체를 활용한 메시지 전달을 시도한다. 인쇄 광고의 기법을 활용해 왔던 그는 TV와 영화가 익숙해지는 시대 상황에 맞춰 영상으로 △계층 문제 △권력 구조 △소비문화 △인간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드러낸다.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

'Untitled(충분하면 만족하라)'(2019).ⓒ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Untitled(충분하면 만족하라)'(2019).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작가는 청중이 떠나려는 그 순간까지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회를 빠져나가려는 관람객에게 크루거는 6m에 달하는 글자로 ‘충분하면 만족하라’라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관람객에게 소비사회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처럼 바바라 크루거는 시각적 매체를 바탕으로 관람객이 끊임없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오는 12월 29일까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방문해 작가가 만들어 내는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다양한 문제의식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