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웅식 기자 (w00ngsik@skkuw.com)

그래픽 디자이너 순수예술에 포함되기까지

대중매체를 활용해 비판적 사고 유도해

대중을 열광시키는 ‘Supreme’ 박스 로고에 영향을 준 예술가가 있다. 그는 몇 년 전 뉴욕지 미국 대선 특집호에 당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사진 위에 흰색 ‘Loser’ 글씨를 빨간 박스와 함께 새겨 넣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잡지 표지 디자이너로 시작해 사회 비판을 작품에 녹여내는 예술가가 된 그는 바로 바바라 크루거이다.

그래픽 디자인에 빠지다
1945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바바라 크루거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했다. 당시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강연하던 세계적인 아트디렉터 마빈 이스라엘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뒤바꿨다. 이 만남은 그의 관심사를 순수예술에서 그래픽 디자인으로 확장시켰다. 바바라 크루거는 “그때 나는 그림과 말의 힘에 심취해 그래픽 디자인에 완전히 매료됐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도움으로 그는 당시 미국의 전국 규모 패션 잡지 <마드모아젤>의 뒷면 박스 광고를 제작하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거뒀다. 입사 1년 만인 만 22살에 <마드모아젤>의 아트디렉터 자리에 올랐는데, 아트디렉터는 잡지의 시각적 표현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당시 그의 재능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크루거의 활동 범위는 잡지 디자인에 한정되지 않았다. 프리랜서 북 디자이너로서 주로 정치적 주제의 책 표지를 디자인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 방향을 구체화했다. 또한 크루거는 다양한 책 표지를 디자인하며 다양한 사진 활용 기법을 익히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켰다.

'Untitled(Are we having fun yet?)'.ⓒ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Untitled(Are we having fun yet?)'.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개념미술의 흐름과 발을 맞추기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그가 수작업을 통한 조각·회화 등의 실제 작품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념미술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는 작품의 제작방식·형태·아름다움보다 메세지를 더 중요시한 마르셀 뒤샹의 생각을 따라 현대미술이 변하고 있었다.

작품의 형태보다는 의미가 중요해지자 예술가들의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예술가는 언어라는 형식을 빌려 작품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했다. 바바라 크루거도 그 중 한 명이다. 크루거는 사진과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는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미국의 아트큐레이터인 린다 와인트라웁은 그의 저서 미술을 넘은 미술에서 “광고 및 선전의 디자인 방식을 차용한 크루거의 작품 제작방식은 메시지의 설득력을 높인다”며 크루거의 작품 특징을 설명했다.
 

텍스트의 조형성을 강화하다
언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해진 미술적 흐름 안에서 바바라 크루거는 텍스트를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이미지와 텍스트 모두 독립적 요소로서 상호작용하며 결합할 때 가장 큰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텍스트를 하나의 독립적 요소로 활용하고자 시도한다.

초기작품에서는 그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들어가는 면을 구분했다. 좌측에는 사진을 배치하고 우측에는 텍스트를 배치하는 전형적인 광고의 구성방식을 차용한다. 그러나 이 방식을 통해서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융화를 이뤄낼 수 없었다. 당시 크루거의 작품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분리됐었기 때문에 상호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이는 과도기적으로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는 이후 이미지에 맞게 배열·색상·크기 등을 바꿔 텍스트를 삽입하는 방식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이미지와 텍스트의 완전한 조화에 실패했다. 호서대 시각디자인학과 정무환 교수는 “이 단계에서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에는 성공했으나 아직까지는 텍스트를 독립적인 조형 자료로 사용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크루거는 텍스트를 독립적 요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이미지에서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텍스트 박스를 사용한다. 텍스트 박스는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줬고 이는 그의 텍스트가 조형적 요소로 보이게 만들었다. 정 교수는 “텍스트 박스의 등장은 텍스트를 이미지와 대등한 또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줬다”며 이는 “텍스트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조형적인 요소로 기능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이러한 텍스트 박스의 사용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독립된 상태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The Globe Shrinks'(2010).ⓒ아모레피시픽미술관 제공
'The Globe Shrinks'(2010).
ⓒ아모레피시픽미술관 제공

 

개념미술, 사회적 이슈와 만나다
미술에서 언어의 사용은 예술가가 자유롭게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메시지를 만들어 주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주류의 권력이 물리력에 의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작동하는 것을 깨달았다.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추상적인 주류의 이데올로기를 가시화한다. 시각화된 주류의 권력을 본 청중은 비판적 사고를 거쳐 권력의 교묘한 사상 주입을 경계하게 된다. 와인트라웁은 그의 저서에서 “바바라 크루거 작품의 목표는 대중을 순종적인 방관자에서 적극적인 사유자로 바꾸어 놓는 것”이라며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대중매체를 활용한 바바라 크루거
기존의 미술은 돈을 지불하고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만이 즐기는 문화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로 광고, 잡지,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이 보편화되며 사회에 대중매체가 범람하게 됐다. 크루거는 이러한 대중매체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광고와 선전 디자인의 형식을 차용한 그의 작품은 포스터 형태로 공공장소에 부착됐고 공공장소를 방문한 사람은 누구라도 미술의 청중이 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대중들이 쉽게 접하는 물건에 자신의 생각이 반영된 예술 작품을 프린트했다. 이를 목격한 청중은 다시 한 번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