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남들이 별 하잘 것 없이 여기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비웃을까봐 잘 고백하지는 않지만, 나는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이 꽤 취미이다. 혜화동 로터리 언저리에 자리한 고 몇 평짜리 안락한 내 보금자리를 슬며시 기어나와서, 제각각의 작은 간판들을 단 술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대로변을 따라 밤거리를 걷는 것이다. 커널형도 이어팁도 없는 에어팟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도 용인하면서, 대부분은 짝을 지어 약속이라도 한 듯 바싹 붙어 걷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대학로를 따라 걷는다. 그러나 나는 이리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모순되게 어느 면에서는 굉장히 게으른 탓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좀처럼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향하게 되면, 결국 언젠가는 다시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서 혜화동 로터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왕복 4차선의 대학로를 오가는 차들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은 꽤 좀이 쑤시는 일인 데다가, 나는 내 산책이 심하게 길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혜화역 4번 출구 쪽의 인도를 거의 벗어나지 않은 채 지하철을 운행하듯 질서 있게 산책한다.

한편 나는 작가 이상을 참 좋아하므로, 꼭 그와 같이 글을 쓰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하거나, 그가 <날개>에서 묘사하던 대로 ‘아무 제목이나 골라 연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 따위의 고민을 한다. 또 어쩌면 이상 역시 결국에는 폐병으로 고생하다가 불꽃 같이 짧은 인생을 살고는 요절해버린 천재로서 그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처럼, 나도 그와 같이 헤비스모커의 인생을 살면서 글을 쓰고 해야 하나 그런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며 걷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거리의 사람들은 어떤 고민들을 하며 거리를 걷나, 그런 식의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타인들의 생각으로부터 조금은 격리되어서, 천천히 대학로의 끝자락을 향해서 걸어간다.

한편 그렇게 맥락 없는 생각들을 줄줄이 줄바둑하듯 늘어뜨리다가도, 혜화역 3번 출구 앞을 지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학림다방> 앞을 지날 때면 그리운 누군가와의 못 다한 아쉬운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서울대병원 암센터 앞을 지날 때에는 여름에 사별한 조부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건물들 앞에서, 떠나간 몇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약간은 쓰라린 기분으로 그들과의 여러 일을 회고하면서 걷는다. 그러다가 동대문으로 향하는 사거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질서 있게 자취방을 향해 귀환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것이 씁쓸한 기억이든 달콤한 기억이든 간에, 나로 하여금 낮동안 잊고 살던 것들을 차근차근 회고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는 이 밤 산책을 사랑한다. 떠나간 이들을 추억하고, 다가올 이들을 기대하고 하며, 낮에는 잠깐 잃어버릴 뻔한 ‘나’를 모래성 쌓듯 차차 찾아와 품 안에 안고 들어올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나는 별 대신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번쩍이는 거리를 지나서, 또 다시 안락한 보금자리로 돌아와, 4200원짜리 플라스틱 만년필로 작가 행세를 좀 해보다가, 그렇게 잠이 든다.

박건후(인과계열 19)
박건후(인과계열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