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ciy0427@skkuw.com)

공간·공감 - 홍콩 타마르 공원

5년 지난 우산혁명 정신은 여전히 이어져
850m의 행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STAND WITH HONG KONG. 지난 3월부터 홍콩을 뒤덮은 이 구호는 반년이 지난 지금도 들을 수 있다. 홍콩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 반대 시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비행기를 타고 3시간을 날아 홍콩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 인천 공항에서 봤던 북적북적한 인파는 홍콩 공항에 도착하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활기차야만 하는 공항조차도 썰렁하게 느껴지는 홍콩은 지난 3월부터 반년 동안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도착한 날에도 2개의 집회가 예정돼있었다. 우산혁명 5주년 기념 상영회와 우산혁명 5주년 기념 집회였다.

두 집회 모두 우산혁명을 기념한다. 2014년 9월 28일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에 요구한 민주적 선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위대가 결성됐고, 이를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하려 했다. 우산혁명은 이 진압에서 쏟아진 최루탄과 물대포를 우산으로 막아낸 데서 비롯됐다. 79일 동안 이어졌던 우산혁명은 민주적 선거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민주화에 대한 홍콩 시민의 의지가 표출됐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최근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시기에 열린 우산혁명 기념 집회는 우산혁명을 넘어선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법안 반대만을 외치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홍콩의 민주화를 함께 소리치고 있다.

우산혁명 5주년 기념 집회는 타마르 공원에서 열렸다. 오후 7시 23분 타마르 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어드미럴티 역에 도착하자 먼저 보인 이들은 무장 경찰이었다. 하지만 스무 명 남짓한 경찰들과 그들의 총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것은 어드미럴티 역을 가득 메운 시위대의 인파와 함성이었다. 1만 명이 모일 것이라 예상됐던 시위대는 역을 빠져나가는데 10분 이상을 소요하게 만들어 그 규모를 드러냈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 구호를 선창하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약속한 듯 후창했다. 역에서 나가기 전까지 기자는 부표처럼 인파에 떠밀려 다녔다.

오후 8시 21분에 다시 도착한 타마르 공원에서는 누군가가 열띤 발언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만 들고 몰린 인파를 향해 걸어가는 기자에게 한 시민이 하얀 마스크를 건넸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하얗거나 까만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고맙다고 말하자 그 시민은 다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주변을 보니 마스크를 나눠주는 시민과 물과 노란 헬멧을 옮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었다. 반복해서 들리는 길안내를 따라 시위대 안으로 들어갔다. 타마르 공원과 공원으로 이어지는 차도까지 사람이 가득해 이동하는 것조차 어드미럴티 역에 도착했던 것처럼 어려웠다.

오후 9시에 타마르 공원에 있던 시위대는 홍콩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기 전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두 명의 시민이 영어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홍콩역으로 걷거나 뛰는 시위대의 끝을 쫓았다. 몇몇 참가자가 시위대 앞쪽으로 뛰어갔다. 분위기가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

홍콩역으로 행진한 시위대는 오후 9시 26분 홍콩역 지하 1층에서 개찰구 너머 주둔해있던 경찰과 대치했다. 고함과 삿대질이 개찰구를 사이로 경찰에게 쏟아졌다. 기자는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홍콩역 지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기자의 뒤편으로 경찰이 같이 올라왔다. 한 층 올라온 경찰은 잠시 거대한 방패를 세워두고서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는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찰칵 소리가 그들의 시선을 끌어 그들이 든 방패가 기자를 향할 것만 같았다.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경찰의 침묵은 이윽고 시위대와 함께 어둠이 깔린 밤 속으로 사라졌다.

오후 10시 정각, 시위대가 홍콩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른 기자들처럼 그들을 쫓으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시위대가 안전을 염려해 갑작스럽게 해산했다는 속보가 이어졌다. 850m의 행진이 순식간에 종료됐다.

아니, 그날 밤만 잠시 멈췄다. 다음날, 그리고 10월 1일 국경절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국경절 시위에서 소년이 가슴에 총을 맞고, 외신 기자가 실명했다. 29일 홍콩을 떠나는 순간에 카메라에 담긴 28일 집회 현장을 봤다. 카메라에 찍힌 날짜는 28일이었으나 28일이 아니었다. 29일이기도 했고, 10월 1일이기도 했다. 우산혁명에서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의 모든 모습이었다.

香港人加油. ‘홍콩인 자유’가 쓰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다.
香港人加油. ‘홍콩인 자유’가 쓰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다.
타마르 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 시위대가 가득하다.
타마르 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 시위대가 가득하다.
홍콩역 지하. 무장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
홍콩역 지하. 무장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