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연수 기자 (yeonsoohc@skkuw.com)

인터뷰 -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

진화의 결과로 망각 일어나
일화적 기억 망각이 가장 쉬워

기억 메커니즘은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미지의 분야다. 그중에서도 가장 베일에 싸여있는 분야가 바로 ‘망각’이다. 그러나 최근 치매 환자가 늘어나면서 비로소 망각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억 못지않게 중요한 망각에 대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김상윤 교수와 함께 알아봤다.

망각은 기억이 아예 지워지는 현상인가.
기억이 완전히 지워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인에게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이름을 다 기억해보라고 하면 못한다. 심지어 명단을 보여줘도 자기 반에 그런 친구가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얼굴을 보고 난 후에야 이름이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도 망각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연 망각은 기억이 아예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망각은 왜 일어나는가.
현재 학계에서 가장 통용되는 이론에서는 망각이 진화에 의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우리 몸속의 신경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이 네트워크가 느슨하게 연결돼있다. 자극이 계속 들어오면 신경 사이의 연결이 강해지는 반면, 자극이 들어오지 않은 부위의 연결은 계속 약해진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자극에 의해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신경세포가 무제한적으로 늘어나면 신경을 연결하는 심장이 견디지 못한다. 너무 많은 신경이 연결되면 심장이 커지는데 심장이 지금보다 커지면 뛰기도 어렵고 생활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결이 약한 부위의 신경세포는 사라진다. 따라서 진화의 결과 가장 최선인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억 종류 중에서 어떤 기억이 망각이 가장 잘 일어나는가.
기억에는 서술적 기억과 비서술적 기억이 있다. 비서술적 기억은 젓가락을 사용할 때 어떤 손가락을 써야 하는지, 자전거는 어떻게 타야 하는지 등을 기억하는 것이다. 한편 서술적 기억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사과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기억하는 ‘문의적 기억’ △자신이 경험한 사건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관한 ‘일화적 기억’ △자신의 삶에 관한 ‘자서전적 기억’이 그것이다. 이 중 일화적 기억에서 망각이 가장 잘 일어난다. 우리는 길거리를 지나면서 보고 듣는 것 중 우리가 집중하는 것만을 인식하고 기억하는데, 이를 반복해서 떠올리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기 쉽다.
 

나쁜 기억을 스스로 지우려고 하는 자발적 기억억압은 뇌의 주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지 않다.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이 있을 때 그 장면을 지우기 위해 기억을 억압하면 오히려 그 기억이 강조된다. 예를 들어 전쟁에 나가서 처참한 장면을 봤을 때 그 장면을 잊으려고 계속 뭔가를 해도 그 기억은 더 선명해진다. 따라서 기억을 지우려고 하기보다는 좋은 기억을 계속 넣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망각을 인간의 축복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왜 그런가.
일반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력이 정말 뛰어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이 좋게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포함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해서 정신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다. 또한 기억력이 너무 좋으면 기억이 노화한다. 보통 심리학적으로 기억의 노화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억, 즉 한 달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억하는 미래기억을 하는 능력이 쇠퇴하고 과거에 점점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동창회를 찾는 것이 기억의 노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옛날 기억은 또렷한데 앞으로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계속 옛날 기억을 찾는 것이다.

김상윤 교수.사진 l 박나영 기자 skduddleia@
김상윤 교수.
사진 l 박나영 기자 skduddle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