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리 기자 (sayyesri@skkuw.com)

노을이나 어스름같이 아름다운 것을 담으려는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본다. 매일 반복되지만 순간이기에 아름다운 것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간절해서 예쁘다. 다시 태어나면 높고 큰 나무가 돼야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더 오래도록 바라봐야지 생각한다.

새해가 되면 매번 일상을 소중히 여기자고 다짐한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패터슨>은 동형 반복되는 일주일 속에서도 각자의 디테일로 채워진 하루는 한편의 시이자 예술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삶은 저마다 빛나는 유일한 걸작이므로. 그리고 신문사는 일상에 미묘한 변주들을 안겨줬다.

여러 번의 회의와 발간은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매번 다르게 느껴졌다. 명륜과 율전을 오가던 버스 밖의 풍경과 편집비로 함께 먹던 밥도 그랬다. 지금은 무뎌졌지만 처음 내 이름이 찍힌 지면을 받아들었을 땐 낯설고 신기해서 동네방네 자랑했었다. 처음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는 정말 기자가 되어야지 생각했었고. K리그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경기장에서 꼭 자신의 이름을 기사에 새겨달라고 말하던 어린 축구팬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있다. 국토대장정에 갔다가 겨우 이틀 만에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는 스스로를 탓하다가도 한라산 정상은 찍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깐 웃었다. 돌아간 본가에서는 이옥토의 <사랑하는 겉들>을 읽으며 곁에서 위로해준 이들의 소중함을 고마워했다. 방중이라는 배를 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빡빡한 일정 속에 서로가 서로의 뒤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질병 방에 갇혀 수습기자를 뽑을 포스터에 들어갈 사진을 깔깔대며 찍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혼자서 버스 두 칸을 차지하고도 꽤 편하게 다녀왔던 가평 빠지의 추억도 머리 위를 떠다닌다. 한참 물에서 놀고 나왔을 때의 묵직함과 불어버린 피부가 보송하게 느껴지던, 그리고 함께 모여 구워먹던 고기까지도 생생하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다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구석이 있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 소중함은 애초에 있지 않은 것.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무수한 계절 중 신문사의 나는 여름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반짝인다고 수습일기에 적었었다. 발간이 몇 번 남지 않은 지금 이미 겨울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취재후기를 쓰고 있다. 다시 돌아온 겨울 신문사의 나는 푸근한 이불보에 싸여 커버가 너덜거리는 오래된 책을 덮으려고 한다.
 

김은리 기자
김은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