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민주 기자 (minju0053@skkuw.com)
사진 l 류현주 기자
사진 l 류현주 기자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색다른 세상 속에서 가지는 재충전의 시간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른다.
사람들에게 여행의 진솔한 기쁨을 전하기 위해 들꽃을 따라 단풍을 따라 바쁜 걸음을 옮기는 여행작가 이종원(중문 85) 동문을 우리 학교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11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선 여행작가의 길
최고의 교육은 경험···  여행으로 세상을 배울 수 있어

세상 경험을 차곡차곡 쌓다
이 동문은 어렸을 때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신림동에서 홀로 지하철을 타고 인천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체국 집배원이셨고, 할머니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옷을 떼서 괴산의 장터에서 팔기도 하셨죠. 아버지도 직장을 자주 옮기셔서 이사도 많이 다녔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가 고등학생일 때는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흥미나 적성을 고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동문은 남들처럼 입시 공부를 마치고 우리 학교 중어중문학과로 진학했다. 당시 중국과의 개방 국면으로 접어들어 중국의 미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동문이 갓 입학했을 때 대학가는 민주화를 향한 열기로 들끓었다. 이 동문은 수업을 듣는 대신 학교 밖으로 나섰다. 한 노신사가 시위 중인 학생들을 위해 광주리에 담긴 빵을 모두 사주는 일도 있었다. “저도 그때 나중에 후배들을 저렇게 도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천원학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후배들의 식사를 지원했는데, 한 학생으로부터 고맙다는 손편지가 오더라고요. 아직도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어요.” 그는 대학 생활 내내 도서관에서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때 쌓인 독서량은 이 동문이 여행작가가 돼 글을 쓰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이 동문은 이준식 (중문) 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교수님이 엄격하셔서 어려웠어요. 그런데 제가 여행작가가 되고 나서 뵀는데, 제 책을 다 사셨다고 하셨어요. ‘종원아, 내가 네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니?’라고 하시면서요.” 이 동문은 대학 시절의 귀중한 경험과 추억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했다.
 

평범한 길은 그만, 여행작가로 내딛다
이 동문은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손해보험사에 취업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무역에 관심이 생겨 우리 학교 대학원 무역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문은 보험과 무역, 두 가지가 모두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문에게 떠오른 것은 여행이었다. 회사 생활 중에도 여행을 무척 많이 다녀 출장을 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자주 출장지에 대해 물어봤다고 했다. “그래서 11년째 되는 해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회사를 그만둔 이 동문의 수중에는 보증을 잘못 서 잃은 돈을 제외하고 21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그중 70만 원을 아내에게 주고, 140만 원으로 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딸도 함께 여행하는 생활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여행작가가 되기로 한 이 동문에게 순탄한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3년 동안은 연 수입이 200만 원에 불과했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데에도 어려움을 느꼈다. 열심히 쓴 글을 한 출판사에서 출판하려 하자, 관계자가 매몰차게 글의 역량이 부족하다며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이내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죠.” 이 동문은 문화센터에 가서 수필 강좌를 듣고,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이러한 노력 끝에 결국, 이 동문은 저서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니? 56으로 여행작가에게 최고의 상인 ‘2012 한국 관광의 별 단행본 부문상’ 을 타게 됐다. 그는 인생 최고의 결정이 회사를 그만 두고 여행작가를 하기로 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죠.”

이 동문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전문 여행작가들의 사단법인 협회인 ‘한국여행작가협회(이하 여행작가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여행작가협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거나 잡지에 일정 기간 이상 글을 기고해야 한다. 신인이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여행작가협회의 일원이 되면 전문가라는 공인을 받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작가협회의 일원이 되면 아무래도 자부심도 많이 생겨요.” 현재 그는 여행작가학교의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여행작가, 어디까지 알아봤니
이 동문은 여행작가란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써 보수를 받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여행작가가 됐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여행에 있어 전문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해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이 필요하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개성 또한 필요하다. 실제로 이 동문의 주변에는 전국의 막걸리를 좇아 여행을 떠나는 작가도 있다. 색다른 시야와 관점은 여행작가의 중요한 소양 중 하나다. 이 동문의 강점은 여행지를 소개하며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걸 흔히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통해 여행지의 매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발로 뛰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죠.”

여행작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이 동문은 프리랜서의 삶을 어려움으로 뽑았다. 어디에 속한 곳이 없는 여행작가는 정기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샐러리맨과는 달리, 일이 없으면 수입이 끊긴다. “비수기인 1월이나 2월에는 수입이 줄어들어요. 여행작가는 사진도 함께 내서 원고료가 적지 않은데도 말이죠.” 이 동문은 여행작가의 경험을 살려 여행을 가지 않는 날에는 각종 기업체 등을 대상으로 여행에 관한 강연을 한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등의 자문위원에 임하기도 하고, 각종 여행 관련 컨설팅을 의뢰받기도 한다. 이 동문의 스케줄러는 11월까지 하루도 비지 않고 다양한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여행 트렌드도 여행작가인 그에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 층은 여행 명소로 포토존 등을 선호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이들의 취향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져요.” 예전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함께 떠나는 여행이 대세였다면 요즘에는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이에 이 동문은 무작정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나만의 여행을 찾고자 한다고 했다. 이 동문의 경우, 예전에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닐 때는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글을 쓰는 데 자신이 있었고, 나이를 먹은 지금은 중장년층이 떠나는 ‘실버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게 편해졌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머무를 수 있기를
현재 이 동문의 목표는 실크로드를 완주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부터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면 유럽에 도착해 실크로드를 건너는 것이 된다. 기나긴 실크로드에서 이 동문이 가보지 못한 곳은, 국가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접사 ‘스탄’이 붙는 나라들만이 남았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꼭 ‘스탄 나라’들을 가볼 거예요.” 이 동문은 또한 훗날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아시안 하이웨이가 완공되면 그곳을 건너보고도 싶다고 덧붙였다. “아시안 하이웨이의 시작이 부산이거든요. 부산에서부터 신의주를 건너 이스탄불을 가보고 싶어요.”

요즘 들어 이 동문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예전에는 지리산은 거뜬하게 올라갔는데, 요즘은 무릎이 아파서 올라가기 어려워요.” 이 동문은 17년간 여행작가를 하면서 누구보다도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는 이 직업이 그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 답했다. “여행작가란 마지막까지 길 위에 있는 사람이죠. 병원보다는 길 위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요.” 누군가 이 동문에게 여행작가를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묻기도 했다. 이에 그는 여행작가를 그만두면 순수하게 여행만을 목적으로 길을 떠날 것이라고 답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면 그에게 여행이 또다시 새롭게 다가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춘, 여행을 떠나라
이 동문은 “여행작가의 범위가 요즘 들어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02년 이 동문이 여행작가로 데뷔했을 때에는 여행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전국을 통틀어 열 명 남짓이었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여행작가의 수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증가했다. 젊은 여행작가들은 이제는 글이 아닌 유튜브에 여행의 흔적을 남긴다. 여행지를 다룬 브이로그도 넘치고 있다. 이 동문은 시류를 따라 유튜브 채널인 ‘모놀 TV’를 개설했다. “‘모여서 놀자’라는 여행 동호회의 이름을 따라 만들었어요.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편집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영상을 만들면서도 여행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동문은 전업 여행작가를 추천하지는 않는다. “해외로 떠나면 몇천만 원이 순식간에 깨져요.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액수죠.” 이 동문의 주위에는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병행하며 여행작가를 하는 사람도 많다. “저도 늦게 시작했지만 꿈을 이룰 수 있었잖아요. 우선은 여행을 미친 듯이 다니고 메모를 남기는 게 중요해요.” 여행의 경험은 꼭 해외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가 있는 종로구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만큼, 국내 여행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동문은 여행작가로서 학우들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추천했다. 첫째는 녹색 숲을, 둘째는 파란 하늘을, 마지막으로는 넓은 바다를 틈틈이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돌려 자연 속에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그는 힘들 때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탐구해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어려운 장벽들도 많이 만나죠. 그런 점들을 극복해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이 쌓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앞으로 살아가면서 스펙보다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