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문화인과의 동행 - 케이크 아티스트 정승호

ⓒ정승호 제공
ⓒ정승호 제공

재료를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
케이크 아트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기대해

특별한 날엔 케이크가 생각난다. 평범한 케이크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시간과 정성이다. 케이크 아티스트 정승호 씨는 케이크를 매혹적으로 빚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세종시에 위치한 케이크 공방에서 그를 만나 케이크 아트의 고민을 나눴다.

케이크 아트란 무엇인가.
케이크 아트는 정교한 케이크 장식을 의미해요. 케이크 아트는 작은 꽃부터 거대한 조각상까지 모양의 제한이 없는 것이 장점이에요. 사람들은 뭔가 멋진 것을 원하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두루뭉술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케이크 아티스트의 역할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케이크 아트에 쓰이는 재료가 다양해지고 보존 기간도 점점 늘어났어요. 초창기 케이크는 빵을 쌓아서 만들고 크림으로 장식했어요. 이후 설탕 반죽을 사용하는 슈가 크래프트가 유행했죠. 그리고 버터크림과 앙금을 사용해 꽃을 짜는 플라워 아트도 등장했어요. 또 이와 별개로 재료를 끓여 액상화해 굳히면서 모양을 만드는 설탕공예와 초콜릿공예가 발달해 화려함을 더했어요. 최근에 저는 초콜릿 반죽을 활용한 케이크 아트를 연구하고 있어요. 초콜릿 반죽은 설탕 반죽보다 오래 보존할 수 있어요. 또 갈라짐 현상이 없으며 먹었을 때 더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죠.
 

케이크 아티스트가 된 계기는.
저는 전자회사와 가구회사에 다니던 디자이너였어요. 디자이너 생활은 에너지가 고갈되는 과정이었어요. 머리를 싸매고 스케치한 디자인은 수백 개인데, 한차례의 품평이 끝나면 단 하나의 디자인만 남았어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연히 접한 것이 케이크 아트였죠. 취미로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다 보니 자격증을 취득하고 호텔 베이커리에서 일을 했어요.

그 후 제 작품을 블로그와 SNS에 올렸어요. 게시물을 보고 하나둘 문의가 오더니, 작업 공방을 차리게 됐고 해외 베이커리 종사자도 관심을 보였어요. 하지만 저는 대회에는 나가지 않았어요. 타이틀이 없어도 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에요. 이전 세대는 유명 대회 수상 경력과 같은 인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작품이 좋으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정받아요. 저는 제가 좋아서 작품을 만들고, 작품이 다시 저를 알리는 거죠.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사슴과 말 머리를 만든 게 가장 애착이 가요. 공방 수업을 떠나 제가 정말 좋아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죠. 사슴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 집처럼 △설탕공예 △설탕 반죽 △초콜릿 반죽 △크림을 모두 활용했고, 말은 초콜릿만으로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지점은 색감이에요. 더불어 크기와 비례도 중요하죠. 그러나 디테일을 결정하는 건 질감이에요. 질감은 작품 표면에서 빛의 반사도에 따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니까 찰나에 결정되죠. 말을 작업할 때 코에 있는 근육의 질감과 핏줄이 도드라진 피부의 질감을 표현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어요.

ⓒ정승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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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제공

 

좋은 케이크 아트 작품이란 무엇인가.
말이라고 진짜 말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 자기만의 맛으로 느낌을 내는 거죠. 예를 들어 피카소가 대충 말을 그렸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말이라고 느껴요. 피카소는 이미 자신이 사용하는 그림 재료를 오랫동안 손에서 익히다 보니까 말의 은유를 그리기만 해도 보는 이가 감동하는 거죠. 장인을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재료가 ‘손에 붙어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아직 그 수준은 아니기에 부단히 노력하는 거죠.

재료를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듯 살아요. 고대에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직업이라는 단어로 쓰였대요. ‘What is your art?’라는 질문은 ‘What is your job?’라는 의미였어요. 다시 이야기하면 예술이라는 단어는 매일 자신이 하는 일이에요.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재료가 손에 붙는다고 생각해요.
 

케이크 아티스트로서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슴과 말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어요. 과거 유럽에서 화려한 케이크가 발달했던 이유는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에요. 현재 한국이 케이크 제작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케이크를 30만 원 주고 살 의향이 없는 거죠.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팔 수 없는 물건이 되는 거예요.

제게 기술을 배우러 오는 업계 종사자는 대부분 대중성 있는 캐릭터 모델링을 원해요. 이 지점이 케이크 아트로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만드는 작품도 좋지만, 지금은 대중성을 만족시키는 공방 교육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디저트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디저트 문화의 저변이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많은 디저트 중에서도 케이크 아트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건 마음의 차이인 거지 지갑의 문제는 아니에요. 우리나라보다 GDP가 낮은 인도네시아는 케이크 지출이 많아요. 케이크를 먹으며 축하하는 것에 의미를 더 많이 두는 거죠. 우리나라는 그만큼 케이크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우리도 여유롭게 케이크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조금씩 바뀔 날을 위해 저는 케이크 아트 작품을 내놓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