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은 인간의 인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각정보는 인간의 이해와 판단에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명제는 이를 입증한다. 범죄수사는 여전히 목격자(여기에서 목(目)은 눈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Eyewitness에 크게 의존한다. 목격자가 제공하는 최상의 정보는 범죄자의 초상, 곧 몽타주이다. 시각적 정보는 한 사람의 경험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공유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입증된다.
물론 시각적 정보는 때로 부정확하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 의해 주로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여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해석한다. 더욱이 시각적 정보를 왜곡하거나 그릇된 시각적 정보를 창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인지와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시도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시각적 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비판함으로써 인지오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선후와 인과를 따지는 논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성적 논리는 시각적 정보를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적 접근을 통해 시각적 정보의 내용과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동원되는 것이다. 결국 해석된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시각이 동원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적어도 상대방이 확실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즉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우리의 아이디어를 다시금 시각화하는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성장은 왜곡된 시각적 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호조건을 만들었다. 예전에도 어느 곳의 호수에 괴물이 출현했다는 둥, 미국 대통령이 외계인과 회담을 했다는 둥 황당한 기사를 담은 싸구려 가판대 잡지들이 이러저러한 페이크 이미지를 싣고 대중들을 끌어모으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들은 대개 조잡한 합성물에 지나지 않아서 큰 기술이나 안목이 없어도 쉽게 거짓임을 알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오늘날은 질높은(?)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비용면에서나 노력면에서 훨씬 쉬워졌다. 서로 다른 소스에서 적당히 긁어온 이러저러한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악마적으로 편집해 넣은 초보적 페이크 이미지부터 고난도의 페이크 이미지까지 모든 종류의 가짜들을 만드는 방법들이 이미 개발되었고 사용중이다. 이제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도 페이크 이미지에 의한 피해를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페이크 이미지는 때로는 한 사람을 모욕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특정한 사회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물론 칼과 방패처럼 그렇게 왜곡된 시각적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자의 기술이 더 빠르고 값싸게 퍼지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미 페이크 뉴스와 관련한 여러 논의에서 드러났듯, 가짜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직 미발달했을 무렵 틀이 잡힌 현재의 법과 기타 제도는 이렇게 세련된 대량의 가짜들과 싸우는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 페이크들과 싸우려다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이들 가짜들은 매우 위험한 가짜들이며 사회에 불신을 만연시켜 토대를 무너뜨릴 가망성이 있는 작은 폭탄들과도 같다. 이들과 싸우기 위해 지혜를 내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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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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