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학기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독일에서 5개월을 지냈다. 다섯 달 동안 독일에서 쌓은 유럽의 감각은 한국 땅을 밟기가 무섭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귀국 이후로는 이미 흐려진 기억을 붙잡으려 고군분투했다. 전공 책에서 보던 독일어가 시야에 매섭게 몰아치던 첫날부터, 각종 치즈와 맥주를 탐하는 사이 점점 귀가 트이고 억양이 그럴듯해지던 하루하루는 그냥 흘려보내기에 너무나도 아깝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단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바로 케이팝 파티다.

나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튀빙겐(Tbinge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튀빙겐은 지역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를 이루는 ‘대학도시’다. 주로 대학생이 거주하기 때문에 독일 내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하필 이곳을 파견 대학으로 선택한 이유는 튀빙엔대학교가 독일에서 한국학과가 개설된 5개 대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문과를 복수 전공 하는 나로서는 최적의 옵션이었고 실제로 그곳 한국학과에서 문학 수업과 역사 수업을 수강할 수 있었다.

한국인인 나는 그렇다 치고, 독일인 재학생들은 대체 왜 한국학을 전공할까? 이전에는 북한과 관련해서 한국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압도적이라 한다. 과연 수업 시간 옆자리 앉은 사람의 손에 손풍기가 들려 있는가 하면, 언뜻 보아 한국인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적인 메이크업을 한 독일인이 강의실에 앉아 있기도 했다. 한국학과 건물에 있으면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사 단지에 있는 쿡쿡(Kuckuck)이라는 작은 클럽 겸 펍에서 케이팝 파티를 연다는 포스터가 붙었다. “우리 다 함께 재밌게 놀고 괄라 될 때까지 술 마십시다! 이번에는 힙합 노래가 좀 많이 나올 겁니다.”라며 한국어로 부연한 설명은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대망의 파티 날, 나의 몸은 어느새 쿡쿡을 향하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찾아간 그곳은 말 그대로 광란의 케이팝 파티였다. 쇼미더머니 노래를 비롯한 각종 국내 힙합을 믹싱한 노래가 귓전을 울렸고 한국학과 수업에서 익히 본 튀빙겐대학교 학우들의 취한 낯이 조명 아래서 번쩍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국인이라는 나의 자격은 유명무실했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나는 ‘요즘 대세 한국 노래’와 소원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정쩡하게 리듬을 타는 동안 한국학과 학우들은 영혼을 담아 춤을 추고 떼창했다. 나는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어떤 사람은 인트로를 듣자마자 “mein Lieblingslied(내 최애 노래)!”를 외치며 펄쩍펄쩍 뛰었다. 빠른 비트의 속사포 랩까지 따라 부르는 독일인들을 보며 나는 환상을 보는 듯한 몽롱함까지 느꼈다. 이곳이 독일인가, 한국인가?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도 가능하긴 할까? 그날의 케이팝 파티는 나에게 ‘국뽕’보다는 야시꾸리한 의문을 남겼다. 말하자면 나는 거기서 제일 덜 한국적이었다. 한국은 이제 국가 개념을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된 것 같았다. 튀빙겐대학교에 다녀온 나는 더이상 “두유노케이팝?”을 비웃을 자신이 없어졌다. 적어도 튀빙겐에서는 하나 마나 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연수(독문 16)
우연수(독문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