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담배, 영화의 주제가 되다
일상의 작은 위안이자 인생 자체를 의미해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이지만 단순한 예술의 영역을 넘어선 사회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역할을 하기에 ‘현실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담배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담배의 다양한 의미를 고찰하는 방법일 것이다. 영화 속 담배에 대해 알아보자.

예술에서 담배란
영화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위조지폐를 태워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은 우울하면서 비장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연배우 못지않게 주목받았다. 현실에서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사회악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영화나 예술 작품에서는 다른 장치가 구현하지 못하는 맥락과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프랑스 문학 연구자인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는 해롭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매혹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국문학자 소래섭은 「1920~30년대의 문학과 담배」에서 “담배는 문학에서 청춘의 상징이나 예술적 수단으로 활용됐고, 민족의식과 저항 의식을 담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라며 담배의 의미를 밝혔다.

영화 속에서 담배가 갖는 가장 큰 역할은 캐릭터의 성격과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웅본색>이나 <비트>에서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캐릭터의 마초적 성격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영화 속 담배는 캐릭터의 반항이나 자유를 표현하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담배는 여성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에도 종종 사용되는데, 전고운 영화감독은 “<타짜>의 정마담처럼 ‘센 여자’를 설정할 때 담배를 쥐어준다”고 지적한다. 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집보다 담배와 위스키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로 등장한다. 전 감독은 “사회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을 너무 부정적으로 소비한다”며 “실제 담배는 순한 여자도 착한 여자도 모두 피울 수 있는 기호식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감독의 의도에 따라 담배는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담배가 단순한 표현 도구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주제로 나타나는 작품도 있다. 담배의 의미를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쳇바퀴 같은 일상의 작은 위안,
영화 <커피와 담배> (2003)

 

<커피와 담배> 스틸컷.
ⓒ다음 영화 캡처

<커피와 담배>는 허름한 카페 등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는 11편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옴니버스 영화다. 커피 중독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도 커피와 담배 예찬론을 펴는 ‘자네 여기 웬일인가’부터 사촌 자매 사이의 질투를 다룬 ‘사촌’ 등 시시껄렁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들이 유쾌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담배의 중독성을 외면한 건 아니다. ‘담배는 해로워’는 담배를 끊으라는 잔소리로만 이뤄진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는 이 영화에 “치명적이어도 영혼에 좋은 것들을 마셔라. 마치 사랑처럼”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담배가 치명적이지만, 사랑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 담배도 사랑만큼 영혼에는 좋은 것이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이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커피와 담배가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을 털어내는 매개체이자, 삶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작은 위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담배 연기처럼…,
영화 <스모크> (1995)

 

담배 가게 주인, 오기.ⓒ다음 영화 캡처
<스모크> 담배 가게 주인, 오기.
ⓒ다음 영화 캡처


<스모크>는 뉴욕의 한 담배 가게를 중심으로 등장인물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0년간 담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오기, 총격 사고로 아내를 잃은 소설가 폴, 강도 사고를 목격하고 도망을 다니는 소년 라시드 등 등장인물 5명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담배 가게가 주 무대인 만큼 처음부터 줄곧 담배 연기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기는 떠나간 애인을 잊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폴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담배를 피운다. 각자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건과 인연으로 엮이며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매듭이 지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담배 연기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심우일 영화평론가는 “<스모크>에서 담배는 인생 그 자체의 상징이다”며 “담배의 이미지가 주는 사유의 과정 자체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점에서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잴 수 있는가’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인생의 무게, 영혼의 무게를 잴 수 있는가’라는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