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리 기자 (sayyesri@skkuw.com)

국내 시행 정책은 대부분 비흡연자 중심
흡연구역과 시설 확충 필요해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흡연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흡연자의 수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포괄하지 않는 기존의 정책은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을 야기했다. 국내 담배규제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왔고,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상생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알아보자.

 

*혐연(嫌煙)권과 흡연권의 충돌
흡연자의 기본권과 비흡연자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흡연자가 자신의 담배 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미 헌법재판소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제7조에 관한 헌법소원심판을 다룬 적이 있다. 해당 법률의 내용은 공중이용시설 중 청소년, 환자 또는 어린이에게 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시설 소유자 등은 당해 시설의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청구인은 이러한 규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등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를 실질적 핵으로 하는 것이고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는 것이므로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국내에서는 금연구역 지정, 담배광고 제한 및 경고문구 등을 표시하는 법률인 국민건강증진법이 1995년에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담배규제 정책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공공장소 내 흡연을 금지하고 금연구역으로 지정 및 관리하는 법적 근거를 수립해 전국에서 적용되는 금연구역을 지정한다. 2012년 공공기관·의료기관·청소년 시설·학교 등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고, 그 범위가 점차 확대돼 모든 음식점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금연구역 확대 중심의 단편적 정책에서 벗어나 더욱 실질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국민건강증진법이 일부 개정됐다.

특히 2014년에는 정부가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목 하에 10년 만에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했다. 흡연의 시작과 금연에 가격이 중요 결정인자이며, 가격상승 없이는 뚜렷한 흡연율 감소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보건 의학적 견해가 근거였다. 또한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제도가 도입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 기본협약이 지정한 10개의 경고 주제 가운데 담배가 위험성을 높인다고 알려진 질병 중 특히 발병률이 높은 암 3종 △구강암 △폐암 △후두암을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모든 담뱃갑에는 흡연의 폐해를 나타내는 포장지 넓이의 100분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크기로 경고그림과 문구를 삽입해야 한다. 간접흡연에 따른 피해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지자체에서는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를 지정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 담배규제 정책의 한계
현재 시행되는 담배규제 정책은 대부분 비흡연자의 권리를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비흡연자만을 위한 정책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는 “합법적으로 팔리는 담배를 소비한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가 흡연자의 존재 자체를 먼저 인정한 후 금연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로 아이러브스모킹이 흡연자 3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담뱃갑 경고그림이 흡연율 감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이 84%였다.

담뱃값 인상이 논란됐던 당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정부가 제시한 4500원은 세수 확보를 위한 최대치”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4500원이라는 담뱃값이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세수 확보를 위한 우회 통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담뱃세 재조정 주장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또한 담뱃세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 소득 역진성이 가장 심한 조세항목으로, 담배가격 인상에 의한 경제적 부담은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 이에 대해 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담뱃세 인상은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켜 사회적 약자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고 전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제도.ⓒ시사상식사전 캡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담뱃갑 경고그림 표시제도.
ⓒ시사상식사전 캡처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상생을 위해서는
지난해부터는 당구장, 스크린 골프장 등 실내 체육 시설에서 흡연하면 과태료 10만원을 물게 됐다. 금연공간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비해 부족한 흡연공간은 역설적으로 흡연자들을 거리로 내몰아 간접흡연 피해를 늘린다. 왕휘(미디어 17) 학우는 “흡연구역과 금연구역 간 구분이 모호해서 비흡연자가 냄새나 담배꽁초 등의 피해를 본다. 명확한 흡연구역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서울시의 「거리 흡연시설 설치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서울의 10개 자치구에서 총 38개의 흡연시설이 운영 중이다. 금연구역이 24만 곳인데 비해 월등히 작은 개수다. 흡연구역 38곳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곳이 다수이며 개방된 형태의 오픈형이 대부분이어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여전하다. 폐쇄형 흡연부스는 환기가 원활하지 않아 흡연자들도 이용을 꺼린다.

우리나라에 비해 흡연이 비교적 자유로운 일본은 흡연공간을 나눈다는 의미의 ‘분연문화’가 정착했다. 2002년 길을 걷던 아이가 보행흡연자의 담뱃불에 눈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뒤 지자체 주도로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고, 대신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흡연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 담배 주식회사(JT)는 흡연공간 마련에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다.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면 JT가 흡연부스를 설치하고 부스 내부에 광고와 담배 자판기를 설치해서 수익을 유지하는 구조다. 싱가포르 또한 공공시설 입구에서 10m, 도로에서 5m 떨어진 곳에 이정표를 세워 흡연구역을 명확히 설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균형 있는 흡연규제의 형성을 통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의 권리가 인정되면서 양립하기를 기대한다.
 

*혐연권=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담배 연기를 거부할 권리.

을지로에 설치된 흡연부스.ⓒ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을지로에 설치된 흡연부스.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