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거 마셔봐” 일하고 있는 수제맥주 펍의 사장님께서 처음 보는 맥주를 한 잔 건네주셨다. 와인과 닮은 검붉은 빛은 어서 마셔보라며 손짓하는 듯 했고, 시큼한 체리의 향은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들었다. 오묘한 빛깔의 액체를 한 모금 넘겼더니 새콤달콤한 신 맛과 쿰쿰하면서도 깔끔한 풍미가 느껴졌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맥주와는 완전히 달랐다. 감격스러웠다. 그 한잔을 아껴 마시며 맥주의 이름인 몽스 카페(Monk’s Cafe)를 계속해서 되뇌었다.

몽스 카페는 시큼함이 특징인 사워 비어(Sour Beer) 중에서 플랜더스 레드 에일(Flanders Red Ale) 스타일의 맥주이다. 사워 비어는 벨기에와 독일에서 태어났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사워 비어로는 람빅(Lambic)과 플랜더스 레드 에일이 있다. 또한 독일의 사워 비어인 고제(Gose)의 경우, 신맛과 더불어 짠맛이 나기도 한다.

사워 비어의 시큼함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맛이다. 김치의 신 맛을 만들어내는 젖산이나 식초의 신맛을 구성하는 초산 등이 사워 비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맥주에 비해 사워 비어는 몇 배의 시간이 걸려 완성된다. 각종 효모와 박테리아 등이 발효되도록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년 동안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워 비어는 일반 맥주보다 찾기 힘들고, 나같이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무서운 가격이다.

맛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사워 비어에 대해 알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며칠 뒤에 같은 플랜더스 레드 에일 스타일의 듀체스 드 부르고뉴를 마셔보았다. 이 맥주는 와인을 보관했던 오크통에서 오랜 기간 숙성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와인맥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 두 번째로 접한 사워 비어는 더 맛있었고 충격적이었다, 병뚜껑을 땄을 때의 식초 향은 살짝 고약하지만 한 모금 마시면 포도향이 느껴지며 계속 입에 머금고 싶어지는 마성의 맛이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다른 사워 비어는 어떠할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고, 결국 나의 눈길은 보다 저렴하게 맥주를 구매할 수 있는 바틀샵으로 향했다. 바틀샵에는 눈 돌아가게 비싸고 맛있는 사워 비어로 가득했고, 마시고 싶은 술을 하나둘 꼽으니 끝도 없었다. 코로나 여파로 펍에 가기 꺼려지기도 했고, 가뜩이나 비싼 사워 비어를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어 합리적인 소비라고 자기 위로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술로 날렸다. 그리고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벨기에 서부 플랜더스 지역의 맥주 양조장에 가서 갓 완성된 신선한 사워 비어를 마셔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성대 신문에 술 냄새 풍기는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나는 집에서  홀짝이고 있다. 알코올 일기를 쓴다는 것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좋은 핑계이다. 혹시나 사워 비어가 입맛에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마셔보기를 바란다. 지친 일상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으니까.
 

박서현(글리 19)
박서현(글리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