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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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이 격돌하여 세기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둑 경기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직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의 염원과는 달리 이세돌 9단은 5회의 대국에서 4승 1패로 알파고에 패하였다. 전통 보드게임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스에서는 IBM사의 딥블루(Deep Blue)가 1997년 그랜드 마스터인 게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하였고, 쇼기(일본 장기)의 경우 머신러닝(machine-learning)을 기반으로 한 보난자(Bonanza)가 2007년 쇼기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패한 뒤 2017년 후속 프로그램인 포난자(Ponanza)는 또 다른 쇼기 챔피언으로부터 승리를 거머쥔다. 딥러닝(deep-learning)을 기반으로 한 알파고는 2015년에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래로 2016년 이세돌 9단, 2017년 커제 9단에 연승을 거두게 된다.

바둑에는 인간의 인지능력, 의사결정, 문제해결 등과 같은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적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바둑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의 시험 대상이 되어온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나에게 보다 흥미로운 것은 알파고의 알고리즘이 경제학의 실증분석 기법과 매우 닮았으며 경제학적 해석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일대 경제학 교수인 미츠루 이가미는 그의 최신 연구에서 알파고의 핵심 원리가 경제학의 동태적 구조 모형(dynamic structural model)을 분석하는 계량경제학 기법과 수리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동태적 구조 모형이란 경제 주체의 현재 시점의 의사 결정이 미래의 보상 및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래에 대해 가지는 예측에 영향을 받는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모형을 말한다. 휴대폰 기기의 구매로부터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향후 가격 하락을 예상하여 최신 기기의 구매 시점을 늦춘다거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제약회사들이 미래의 보다 큰 수익을 위해 현재에 신약개발에 투자하는 의사결정 등이 모두 동태적 구조 모형을 통한 분석이 필요한 예라 하겠다.

바둑은 가로·세로 19줄로 만들어진 판 위에 흑돌과 백돌이 현재 몇 개 그리고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경제학의 동태적 모형에서는 이처럼 의사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현재 시점의 주어진 환경을 상태(state)라고 정의한다)에 따라서 다음에 어떤 수(手)를 놓는 것이, 향후 전개될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했을 때, 최종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지 결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동태적 모형에서의 의사결정과 동일하다. 한편, 바둑을 둘 때 고려하게 되는 상태(state)의 모든 경우의 수는 10171 개에 달해 아무리 최신 컴퓨터라 해도 가능한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simulation)하여 다음 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파고는 이처럼 복잡한 동태적 의사결정에서 인간을 앞지르기 위해 바둑 고수들이 참여한 온라인 바둑 게임의 데이터, 그리고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모형 및 시뮬레이션 기법 등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경제학의 동태적 구조 모형을 분석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학계에서 줄곧 발전해온 계량 경제학적 기법과 매우 흡사하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했을 때,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과 같은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 아니냐는 우스갯말을 하거나, “인간 아닌 이세돌이 진 것”이라는 이세돌의 인터뷰에 초조함 섞인 안도를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율주행차나 의료·바이오 분야의 AI 기술 개발로부터의 혜택을 기대하는 한편, 인간의 고유한 지적 영역으로 여겨왔던 분야를 AI가 대체하거나 인공지능 권력 구조가 초래할 사회 혼란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우려 섞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알파고 알고리즘의 핵심 원리가 지난 수년간 축적되어온 경제학의 이론 및 분석기법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통해서 인공지능을 포함한 컴퓨터 기술의 개발 및 활용에 여전히 인간의 지적 능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김현철 교수 경제학과
김현철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