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maywing2008@skkuw.com)

최근,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3개~4개의 과외 일을 하며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여러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연신 칭찬과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게 친구는 한숨을 쉬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최선을 다해 쉽게 이야기하는데,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어. 이 정도는 상식 아니야?” 한 학생이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민이었다. “학생마다 이해력이 다르니까”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 후 다음에 한번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정말 학생의 이해력만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정도는 상식 아니야? 왜 이해를 못 해?”
이 흔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의 저자 김범준은 자신의 저서에서 ‘지식의 저주’라는 개념을 인용한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은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식의 저주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의 실험을 제시했다.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은 ‘두드리는 사람’, 나머지 한 그룹은 ‘듣는 사람’의 역할을 주었다. 두드리는 사람은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벽을 두드리고, 듣는 사람은 그 노래가 무엇인지 맞히는 간단한 실험이다. 실험 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두드리는 사람의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50%의 정답률을 예상했지만, 실험 결과 정답률은 단 2.5%였다. 저자는 설문조사와 결과의 극명한 차이가 바로 ‘지식의 저주’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사와 멜로디를 생각하며 벽을 두드리기 때문에, 상대도 답을 맞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밀한 가족관계라고 해도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지식만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기는 힘들다. 그 때문에 지식의 저주는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A와 B 중 당연히 A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청자는 당연히 B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잘못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까? 둘 다 각자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이런 경우 대개 제 삼자는 ‘둘의 말이 모두 맞다’며 선택을 회피하곤 하며, 결국 셋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이 난다.

때로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식의 저주를 푸는 방법은 이 세상에 ‘모두에게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에겐 그 지식이 당연할지라도, 어떤 이유이든 상대에겐 그리 당연한 지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의 공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대도 당연히 알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뢰보다는 자신이 지식을 습득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며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에야 의사소통을 매끄럽게 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지혜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친구와의 앞선 통화에서 지울 수 없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지식의 저주’로 결론 내린 나는, 이 지식의 공유를 위해 다시 휴대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나래 부편집장
김나래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