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대교 (redhean2000@naver.com)

체계적인 현장보존 중요해
과학의 발달로 정확한 DNA 감식 가능해져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총 10차에 걸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범인을 밝히지 못하고 끝나지만 지난해 33년 만에 진범이 밝혀졌다. 하지만 2006년에 10차 사건의 공소시효 기간이 끝나면서 처벌할 수 없어져 안타까움을 남기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근무했던 우리 학교 일반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임시근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와 실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비교하고, 현대 과학수사의 DNA 감식 기술을 기반으로 수사를 해본다면 어떨지 알아보자.


영화와 실제 사건에서의 현장 보존
영화 속 살인 사건 현장은 현장 보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 보존이 이뤄지지 않는다. 시체 주변에 어린아이와 동네 주민이 와서 구경하는 등 주변이 통제되지 않는다. 사건의 증거였던 족흔도 보존하지 못하고 그 위를 차가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임 교수는 “심지어 증거물 또한 오염 가능성이 있는 비닐봉지나 신문지를 이용해 운반하기도 했다”며 “실제 사건 현장에서도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0년의 현장 보존
임 교수에 따르면 현장은 무조건 보존돼야 하는 중요한 증거다. 현대 과학 수사에서는 범죄 현장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한국 과학수사대(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이하 KCSI)가 바로 출동한다. KCSI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범죄 현장이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범죄 현장은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으며, 실외이거나 실내일 수도 있다. 현장의 범위가 정해지면 폴리스 라인을 치고 범죄 현장을 통제해야 한다.

증거 수집은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체는 당연하고 시체 주변까지도 찾아봐야 한다. 또한 이 사건이 살인인지 강간인지 등 사건의 유형도 판단해야 한다. 사건의 유형에 따라서 어떠한 증거를 찾아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예를 들어 성범죄 같은 경우는 정액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증거물은 미세한 증거가 전이되거나 서로 섞여 훼손되는 교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하나 개별 포장하고 봉인한다. 또한 증거물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수거했는지를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영화와 실제 사건에서의 DNA 감식
영화 속에서는 시체의 부검을 통해 정액을 찾아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술로는 DNA 감식이 불가능해 미국에 감식을 요청해 결과를 기다린다. 임 교수는 “실제 사건에서도 그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로는 감식할 수 없어 일본에 감식을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DNA 감식 기술로는 2개 정도의 STR(Short Tandem Repeat) 마커 밖에 분석할 수 없었다. STR 마커는 반복된 DNA 염기 서열로 구성된 염색체상 특정 위치를 말한다. STR 마커는 개인별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일종의 프로필처럼 이용된다.
 

2020년의 DNA 감식
사건의 유형이 살인, 강간으로 판단되면 정액을 찾을 것이다. 시체를 부검실로 옮겨서 면봉으로 신체 전체를 꼼꼼하게 채취한다. 정액이 없다면 타액이나 혈흔, 피부 세포를 찾아낼 수도 있다. 정액을 찾아냈다면 이것이 진짜 정액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정액에는 대표적으로 *산성인산화효소와 *전립선특이항원이 들어있는데, 이러한 물질의 존재 여부로 정액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 다음부터 DNA 실험을 한다. 우선 DNA만을 순수하게 정제하고 정제된 DNA가 양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DNA 정량과정이 이뤄진다. 그 뒤에 다중증폭 STR 분석을 한다. 임 교수는 “과거에는 2개 정도의 STR 마커 밖에 없었으나 현대 과학수사 기술의 발달로 식별력 높은 새로운 20개의 STR 마커들을 동시에 증폭하여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모세관 전기영동기술(CE)로 DNA를 분석한다. DNA는 음전하를 띄기 때문에 전기를 걸어주면 크기가 작은 DNA부터 양전극 쪽으로 이동한다. 이 결과를 컴퓨터를 이용해 그래프로 만들어내고 DNA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다. 만약 20개의 마커와 모두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인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또 다른 미제 사건이 생기지 않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산성인산화효소=남성의 전립선 분비액(정액)에 다량으로 들어 있는 성분.
*전립선특이항원=전립선세포에서 나오는 단백질.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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