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대교 (redhean2000@naver.com)

 

법과학의 객관성과 확실성으로 비과학적 수사 극복해
물리적 증거의 한계 보완하는 디지털 포렌식

사회가 변하면서 범죄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학이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면서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밝힌다’라는 기본이념으로 범인을 잡는 과학수사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수사란
과학수사란 과학적 지식과 현대적 과학기구를 활용하는 수사를 말한다. 과학수사에 활용되는 학문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자연과학적 지식은 물론 △범죄학 △법의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적 지식의 원리를 총동원한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는 1955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꾸준히 발전해왔다. 1991년에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영향으로 첫 DNA 실험실이 생겼다. 이에 힘입어 한국의 범죄 검거율은 높아졌고,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살인 사건 검거율은 지난 15년간 평균 96%에 이른다.

과학수사의 꽃 법과학
과학수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은 법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학이란 자연과학적 지식과 전문기술을 기초로 해 △범죄 △사고 △재난의 발생 원인과 양태에 대해 법률적으로 중요한 사실관계를 연구하는 응용과학을 말하며, 과학수사를 뒷받침하는 모든 분야의 학문을 포함한다.

우리 학교 일반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임시근 교수는 “과학수사는 현장, 법과학은 연구실의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과학수사는 사건 현장에 남는 △유형적 잔류물 △피해자 상태 및 행동적 증거 △혈흔을 찾는다. 그리고 법과학을 이용해 이러한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수사기관에 제공하고 범죄 입증을 돕는다. 법과학은 객관성과 확실성을 통해 비과학적인 수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형사사법제도에 있어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과학은 범죄 해결을 위해 활용되는 모든 분야의 학문을 포함하는 만큼 다양한 분야로 이뤄져 있다. 대표적인 법과학의 분야로는 △지문 감식 △혈흔 형태 분석 △DNA 감식이 있다. 이러한 법과학에 사용되는 기술 대부분은 법과학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발전한 기술로부터 과학수사에 필요한 부분을 가져와 법과학에 적용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혈흔 속 DNA 감식을 해야 한다면 DNA 감식 기술과 혈흔 형태 분석 기술을 함께 응용해 범죄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각 분야는 개별적이고 전문적이지만, 법과학은 전체적으로 범죄 해결을 위해 각 분야를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응용과학이다.

이러한 법과학의 필요성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범죄의 변화 때문이다. 범죄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지능화되면서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범죄자의 전문화된 범죄계획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두 번째로 사회 인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국민의 인권이 우선적 가치로 여겨지고 수사 및 사법 절차에서 적법 절차를 따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로 인해 단순히 범죄자를 감시하고 그들에게 접근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마지막으로 재판 체계의 변화도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는 재판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실체를 심판하는 공판중심주의를 재판 체계로 삼고 있다. 이 결과 법과학 및 과학수사를 통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수사의 바탕, 디지털 포렌식
디지털 포렌식은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지털 기기를 매개체로 해 발생한 특정 행위의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방법을 말한다. 디지털 데이터가 법적 효력을 가지는 증거 데이터로 사용되기 위해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증거 수집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증거 수집 절차는 디지털 포렌식의 대표적인 기본 원칙 중 진본성과 무결성으로 검토할 수 있다. 우선 진본성은 증거 원본의 본질적 특성을 재현해 동일한 속성을 지니면서, 부당하게 변경 또는 변조되지 않은 생성 당시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한편 무결성은 훼손 · 손상 · 변조 등에 의하여 기록이 변경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본성이 목표라고 할 때, 무결성을 보장하는 일은 이 목표를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 처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 디지털 포렌식 연구센터 이상진 센터장은 “현대 사회의 경제 범죄나 사기 사건 등의 많은 범죄가 물리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그에 반해 디지털 기록물들이 많다”고 말하며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을 밝혔다. 더 나아가 이 센터장은 “모든 사건에서 디지털 포렌식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 과정에서 CCTV와 자동차의 블랙박스 등의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는 데에도 디지털 포렌식을 활용한다. 또한 살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스마트폰 조사를 통해 인간관계를 분석하면 용의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수사의 난관, 안티포렌식
이처럼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증거물의 법적 효력이 강해지면서 안티포렌식 기술도 함께 발전하고 있다.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피하고자 n번방에 참여한 가해자들의 접속기록을 삭제하려는 정황이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는 안티포렌식을 이용한 것이다. 안티포렌식이란 디지털 포렌식 기술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증거물을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인 안티포렌식 기술에는 데이터 삭제와 데이터 은닉이 있다. 데이터 삭제 기법으로는 와이핑이 있는데, 이는 데이터 영역에 *난수나 ‘0’을 여러 번 덮어쓰는 방식으로 원본 데이터를 삭제하는 기법이다. 데이터 은닉 기법에는 중요한 문서 파일 등을 이미지·오디오·비디오 파일에 끼워 넣어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가 있다. 안티포렌식에 대해 이 센터장은 “안티포렌식은 수사에 있어서 큰 난관”이라며 “이에 대응해 암호 해석 기술이나 숨겨진 데이터를 찾아내는 기술들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학수사
임 교수는 “우리나라 감식의 속도는 세계 최고지만,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과학수사가 발전해야 하는 방향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학부 과정에서의 과학수사 교육은 없고 우리 학교 일반대학원의 과학수사학과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연구 개발 투자는 GDP 대비 세계 1위 수준이지만 포렌식 분야에는 투자가 부족하다. 이에 임 교수는 “앞으로 과학수사를 책임질 인력양성에 힘써야 하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연구를 해 나아가야 한다”며 “이러한 부분에서 정부에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임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과학수사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난수=무작위로 만들어진 수열.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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