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유리 기자 (dbfl1222@skkuw.com)

 

디지털 성범죄 처벌 공백을 메꿔야
올바른 성 의식 갖추기 위한
사회적 노력 필요해

최근 벌어진 n번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졌다. 보안성이 높은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다수의 피의자가 수많은 성 착취 영상물을 공유했다. 피해자에는 아동과 청소년까지 포함돼 있었다.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70만 명 이상의 역대 최다 동의 수를 기록하며 국민적 관심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플랫폼만을 바꾸며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어느 때보다 문제 제기의 목소리가 큰 지금, 이번에야말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할 때이다.

 

오래된 범죄, 디지털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는 온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기기나 디지털 이미지를 악용해 성적 착취 혹은 성적 학대를 행하는 범죄다. 통신매체 기술의 발달과 함께 피해자의 인격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 착취물의 유형은 다양해졌다. △딥페이크 △리벤지 포르노 △몸캠 △아동 포르노 등의 성 착취물은 소위 ‘야동’으로 취급되며 온라인 공간에서 별다른 규제 없이 공유됐다.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역사는 깊다. 지난해 국제 아동 성 착취물 공유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가 적발됐지만 운영자는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2018년에는 불법 영상물을 유포하는 동시에 이를 삭제하는 업체를 운영하면서 피해자를 기만한 ‘웹하드 카르텔’ 사건이 발생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개설된 국내 최대 성 착취물 공유 플랫폼이었던 ‘소라넷’은 2016년 실체가 밝혀졌다. 당시 100만 명의 가입자가 있었으나 공동운영자 1명만 징역 4년 형을 받았으며 추징금도 징수되지 않았다.

이전부터 계속된 미온적인 처벌은 결국 n번방 사건을 초래했다. 사건의 가해자는 보안성이 높은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사용하며 치밀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이렇듯 디지털 성범죄의 수법과 플랫폼은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 성 착취물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합의되지 않았으며 음란물로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필요한 지점이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한 양형기준 설정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사법부의 관대한 처벌 관행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불법 촬영 및 유포 행위는 최대 5년(영리의 경우 최대 7년)형을 받는다. 하지만 2018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 현황은 벌금형이 71.9%,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는 22.2%, 징역형은 5.3%에 불과했다.

따라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형기준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대법원이 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양형기준 설정논의가 나오는 법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 연구회 회원인 법무법인 숭인(대표 양소영) 김영미 변호사는 “성 착취 영상의 유포 시 피해자의 고통은 극심한 데에 비해 가해자의 형량이 너무 낮다”며 “직접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보다 고통이 결코 덜하지 않으며 그간 사법부의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성 착취 피해자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자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의 양형기준 설정도 논의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공백을 막기 위한 법 개정
디지털 성범죄는 법안이 현실의 범죄 수법과 형태를 포괄하지 못해 처벌 공백을 허용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성폭력처벌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는 동의한 촬영물이라는 이유로 ‘리벤지 포르노’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거나 합성기술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자를 처벌하지 못하기도 했다. 신종 범죄 수법이 생기면 현행법안으로 처벌할 수 없는 공백이 생기고 이를 따라 법안을 수정하는 식이었다. 김 변호사는 “가해자들은 법을 피해서 새로운 범죄 수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며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일어났을 때 빨리 입법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n번방 사건의 성 착취물을 직접 올리도록 협박한 행위와 성 착취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디지털 성범죄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는 형법상의 협박이나 명예훼손으로만 처벌이 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이 부분도 성범죄로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협박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못 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영상 유포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합의한다면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하기 위한 플랫폼 규제
디지털 성범죄는 갈수록 찾기 어려운 공간으로 도망친다. 따라서 플랫폼 운영자에 대한 규제도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해외 플랫폼은 불법 촬영물 유포가 발생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일일이 해외 플랫폼에 수사 협조를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 속도가 느리고 규제의 사각지대도 발생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해외 플랫폼의 협조를 용이하게 하도록 각국의 정부가 협약을 맺는 등의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김 변호사는 “수많은 가해자가 텔레그램에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잡히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강력한 수사와 처벌 의지를 보여주면 예방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올바른 성 의식을 위한 노력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 권인숙) 윤덕경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한 구조적 원인은 성평등 의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깔려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이를 보고 유통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 개인이 아닌 공동체 문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한편 온라인상에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도 발생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설령 스스로 사진을 올렸다고 해도 범죄에 이용당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며 “그런 시선 때문에 신고를 못 하는 피해자들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윤 연구원은 “초·중·고 때부터 인권과 성 인지적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회 전반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영미 변호사
김영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