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채은 (ohche@naver.com)

 

 대체복무제도에 선택권 부여로 강제노동 기준 벗어날까
“노사 모두 핵심협약 비준의 취지 생각해야”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유럽연합(이하 한-EU)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이하 FTA) 전문가 패널 심리가 연기됐다.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이하 ILO사진)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미뤄진 것이다. ILO는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핵심협약 비준을 권고해왔다. ILO의 핵심협약은 무엇이며, 이를 비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ILO와 핵심협약
ILO는 국제연합의 노동 전문기구로, 국제노동기준을 설정하며 △노동자 △사용자 △정부의 대표자를 통해 다양한 노동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ILO는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현재까지 190개의 협약을 채택했으며, 이 중 8개를 핵심적인 협약으로 설정했다. 핵심협약은 △강제노동 금지 △결사의 자유 △균등대우 △아동노동 금지 협약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비준 현황
우리나라는 1991년 ILO에 가입했다. ILO는 회원국에 8개의 핵심협약 비준을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강제노동 금지와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ILO의 권고에 따라 우리나라는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한 바 있다. 2011년 발효된 한-EU FTA 협정문에도 ‘양 당사자는 대한민국과 유럽연합(European Union, 이하 EU) 회원국이 각각 비준한 ILO 협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그러나 협약 비준을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은 아직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EU는 한-EU FTA 노동조항을 근거로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각국의 경제적 거래에서 기업 노동문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오종근) 이승욱 교수는 “293개 FTA 중 85개에 노동조항이 포함돼있으며, 실제로 그 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고 전했다. EU는 2018년 우리나라에 FTA 분쟁 해결 절차 중 하나인 정부 간 협의를 요청했다. 우리나라가 한-EU FTA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력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어 EU는 지난해 7월 FTA 분쟁 해결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했다. 전문가 패널은 한국, EU, 제3국 출신 패널로 구성되며, 우리나라와 EU가 제출한 각각의 의견서를 보고 FTA 노동조항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강제노동 금지 협약 비준으로 대체복무제도에 변화 생길까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국내법에서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29호는 우리나라의 병역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ILO는 강제노동을 처벌의 위협에 의해 강요받거나 비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로 규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제외되는 몇 가지 예외조항들이 있다. 병역법에 의해 강요되는 전적으로 군사적 성격의 노동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대체복무제도는 ‘전적으로 군사적 성격의 노동’이 아니므로 강제노동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해당 협약을 비준한 나라 중, 우리나라의 대체복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진 터키와 이집트에 대해서 ILO가 협약 위반의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비준할 경우 대체복무제도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보충역 대상자도 본인이 원한다면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병역의무 이행의 선택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권을 부여한 대체복무제도가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는 상태다.
 

결사의 자유 협약을 둘러싼 노사의 이해관계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권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측은 사용자 대항권을 추가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협약 비준을 위해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노동조합 관련 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만족스러운 입장이 아니었다. 노동계의 요구에 따라 실업자와 해고자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지만, 노동계는 그에 추가로 붙은 조항들이 신설 규정의 효과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실업자와 해고자는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추가 조항에 따라 임원의 자격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 전임자는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 급여를 수령해야 한다. 한편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상한을 연장하고 파업 시 직장 점거를 제한했지만, 경영계는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폐지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FTA에 포함된 노동조항을 위반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번 심사에서 위반 판정을 받게 되면 FTA 노동조항을 최초로 위반한 국가가 될 수 있다. 노동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노동기본권 보장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ILO 긴급공동행동’에 참가한 청년유니온(위원장 이채은) 장지혜 서울지부 위원장은 “ILO 핵심협약 중 청년과 가장 밀접한 부분은 결사의 자유”라며 “협약 비준을 통해 단결권 주체의 범위가 확대되면 청년들의 일터 문화와 근로조건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 그중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가장 쉽지 않아 보인다. 이 교수는 “핵심협약 비준 취지에 부합하도록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는 핵심협약이 가진 목적이 무엇인지 고려해야 하고, 노동조합도 모든 것을 한 번에 쟁취하겠다는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노사 모두 핵심협약 비준의 취지를 생각해볼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