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maywing2008@skkuw.com)

이제까지 나는 ‘훌륭한 청자’의 자세란 화자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고 완전히 이입해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스로가 꽤나 좋은 청자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인들은 나에게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그런데 얼마 전, 내 생각에 약간의 균열을 가져오는 일이 발생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연인과 이별했다며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는 평소 연인과 자주 다투고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하곤 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잘 됐다”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친구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 드는 동시에 여전히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평소처럼 친구의 상황을 천천히 생각해보며 그 친구에게 완전히 이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만큼은 친구의 감정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나였다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나는 친구에게 ‘훌륭한 청자’가 되어주지 못했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작은 균열로 시작된 고민은 며칠 지나지 않아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공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됐다. 그리고 문득 몇 달 전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은 그의 저서에서 ‘상대방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제시한다. 사람은 모두 다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보고 완벽하게 똑같은 감정을 가질 수도 없고, 상대의 감정에 완전히 이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너와 나’는 엄연히 다르다. 즉, 이전에 내가 생각하던 ‘훌륭한 청자’의 자세란 애초에 완벽하게 수행될 수 없고, 그저 ‘나였다면’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저자는 화자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 역시 공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때때로 타자의 감정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의 이분법적 개념으로 접근하곤 한다. 기존에는 ‘찬성’만이 공감으로 여겨졌다면, ‘반대하지 않음’ 역시 공감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하기 위해선 공감 받아야 한다
또한 저자는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온전한 공감을 위해선 자신이 공감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특히 자신이 자기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흉내라도 낼 수 있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서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던 이유도 먼저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공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을 공감하기 위해선 먼저 나의 감정을 인정받아야 하며, 그제야 다음 단계인 온전한 공감을 실천할 수 있다.
 

진정한 수용과 공감의 길
앞선 내용을 종합해보았을 때 완전한 공감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나와 너를 명확히 구분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진정한 공감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공감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나였다면’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진정한 수용과 공감의 길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나래 부편집장 maywing2008@skkuw.com
김나래 부편집장
maywing2008@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