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근 판결문에서 ‘거래비용’과 같은 경제학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제학이 법 속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는 증거다. 경제와 법의 연관은 경제법뿐 아니라 *공법과 *사법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는 법경제학이 △헌법 △민법 △형법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알아보자.

판결에 법경제학 이론인 ‘핸드룰’ 적용 가능해져
최적의 형벌 내리려면 경제학 원리 대입해야

최고권위 헌법 속 경제

헌법 제119조 제1항은 우리나라의 경제질서에 대해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의 경제질서가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임과 동시에 국가의 개입이 있는 제3의 경제질서”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일례로 헌법은 ‘법익의 균형성’을 측정하기 위해 ‘비용-효과 분석’을 사용한다. 어떤 법률의 이익이 그로 인한 기본권 제한이라는 비용보다 클 때 그 법률은 합헌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산권의 보장 속 법경제학의 원리
법경제학은 개인의 재산권 보장을 자원의 효율과 연관 짓는다. 재산권의 보장이 없으면 자신의 재산을 지키거나 타인의 재산을 훔치는 데 자원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장승화) 고학수 교수는 민법은 재산법에 한해 효율의 증진을 중요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민법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계약 자유의 원칙을 따르고, 계약에 의한 법률관계의 형성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전히 각자의 자유에 맡겨진다.

법경제학은 막연히 이론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무에 개입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28일 대법원은 법경제학 이론인 ‘핸드룰(Hand Rule)’을 적용해 수영장 사고로 인해 사지가 마비된 어린이에게 관리 공단 측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의 쟁점은 관리 공단이 수영장의 구역을 ‘코스 로프(course rope)’로만 구분한 것이 사고 예방조치를 다했느냐는 것이다. 이때 적용된 핸드룰은 ‘사고 예방조치에 드는 비용’이 ‘사고 발생 확률’과 ‘사고 시 피해 정도’를 곱한 값보다 작다면 사고 예방조치를 강화할 의무가 있다는 공식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고 예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관리 공단이 피해를 입은 어린이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사례는 법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유효함을 알려준다.

 

범죄와 형벌에도 경제가?
경제는 범죄와 형벌에도 스며들어 있다. 법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형법은 최적의 형사정책 구현을 목표로 하고, 범죄자는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라며 형법에 경제학을 적용한다. 범죄와 형벌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그 배경으로 한다. 고 교수는 “형법에 관한 법경제학 시각은 범죄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처벌이 재발 방지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 이론적, 통계적으로 분석해 개선책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A라는 범죄에 대해 형벌을 강화하면 범죄율이 줄어드는지, 그 효과의 크기나 정도는 어떠한지 파악하는 것이다.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계산해 범죄를 행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범죄 및 형사정책에 대한 법경제학적 접근(Ⅰ)에 의하면 형벌을 부과할 때 사회적 손실이 범죄자가 예상하는 범죄 비용이 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따라서 되도록 수사비용을 줄이고, 가능한 최대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범죄의 경우 벌금형만으로 최적의 범죄 예방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자유형의 경우에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법 집행의 문제는 비용을 고려해 적절한 자유형의 수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러한 경제학적 접근은 형사적 복잡성을 단순히 효용이나 최적 개념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법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비용과 그에 비한 범죄억제 효과를 살펴볼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법경제학의 미래
법경제학은 이처럼 법 안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고 교수는 법경제학의 향후 연구에 대해 “법경제학은 독자적인 학문 영역이면서 동시에 연구방법론이기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연구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특히 고 교수는 “앞으로의 법경제학은 사법제도에 대한 분석, 입법 과정과 정치과정에의 응용 등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법=국가 또는 공공단체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 헌법, 형법 등이 있다.

*사법=개인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관계를 규율하는 법. 민법, 상법 등이 있다.

*자유형=형을 받는 사람을 일정한 곳에 가둬 신체적 자유를 빼앗는 형벌. 징역, 금고, 구류의 3가지 종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