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미래의 역사가가 22세기의 초입에서 21세기를 되돌아보는 날이 온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꽤나 긴 코멘트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단숨에 인간들을 강제휴가 보내버렸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도시들을 그 흔한 교통딱지 하나 끊지 않고 며칠씩 차 없고 매연 없는 도시, 친환경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큰 변화가 닥치면 언제나 그 다음에 펼쳐질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기 마련이다.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둘러싸고 담론의 경연장이 따라 열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인간의 사회와 문명이 가진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결론으로 이끄는 경우를 보게 된다.

14세기부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결국 중세의 종말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요즘 자주 듣는다. 필자가 주로 다루는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역사에서도 흑사병은 중요한 문제였다. 흑사병은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 충격은 예술과 종교에서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흑사병이 중세문명을 붕괴시켰다는 주장은 문제를 과장하고 단순화한다. 흑사병이 중세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학설은 19세기 말부터 한동안 유행했다. 그 원조쯤 되는 중세사 James Rogers는 1884년 Six Centuries of Work and Wages. The History of English Labour에서 흑사병이 초래한 인구감소가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져 임금의 상승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인구가 감소한 탓에 수요가 줄어듦으로써 농산물가격까지 하락했다. 결국 지불할 돈은 늘고 수입은 줄게되자 봉건영주들은 토지를 자유민이나 농노들에게 임대하여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주들은 농민들을 더 쥐어짜서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는 농민들의 반란이었다. 결국 페스트가 중세의 경제, 사회체제를 근저로부터 뒤흔들어 궁극적으로는 붕괴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오늘날 학문의 기준에서 볼 때 로저스의 주장은 빈곳이 너무 많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자리에서 자세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흑사병이 중세의 종말을 가져온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중세연구가들은 오늘날에는 거의 없다. 인간의 사회는 강한 관성과 탄력성을 지닌 조직이다. 그리고 인간사회는 더욱 그러한 관성과 탄력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전쟁, 기근, 전염병 등 과거에는 한 인간집단을 근본적으로 지구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던 사건들조차 과거와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실제의 역사는 훨씬 복잡하게 흘렀다. 중세의 경제라는 것 자체가 로저스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흑사병이든 혹은 기근이든 어떤 사건이 한 사회에 작용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 어떨까?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미래를 바라보고 내리는 정책 결정 과정 역시 사회의 관성과 복잡성 모두를 잘 고려해야 한다. 관성은 사회를 유지시킨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도 제도가 급격히 붕괴되는 일은 보기 힘들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관성은 사회의 진화와 발전을 가로막기도 한다. 필요한 부분에서 혁신을 하지 못하면 어제의 초강국이 지나간 옛날의 공룡이 되고 만다는 것을 최근 코로나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영국을 위시한 유럽국가들이나 일본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미 고도의 복잡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하나의 틀로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가 수렴되기는 매우 어렵다. 그만큼 각 사회집단과 부문이 합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진다. 정책의 제안자는 정부일수 있지만, 그 내용은 각 사회의 부분과 집단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이후 문명의 모습은 우리에게 완전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갈 어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