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우유를 마시고 배앓이를 해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법도 하다. 이를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 / Lactose Intolerance)이라고 하는데, 심한 경우 복통과 설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운전해야 하거나 등산을 가는 경우 내가 우유를 피하는 이유다. 30년 전에 이 용어를 처음 가르쳐 주신 교수님께서는 우유를 마실 때 꼭 요구르트를 같이 마시라고 하셨는데, 그 강의를 같이 들었던 친구 중에 몇 명은 아직도 진짜로 그게 버릇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버릇이 생활의 지혜인지 배움의 결과인지에 대해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유당은 젖당으로도 불리며 포도당과 갈락토오스가 결합된 이당류이다. 이 이당류는 유당분해효소(lactase)에 의해 각각의 단당류로 분해되어야 우리가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모유는 모든 포유류의 젖 중에서 가장 높은 약 7%(70 g/L)의 유당을 함유하고 있고, 우유는 4~5%의 유당을 포함하고 있다. 소장에서 유당분해효소가 충분히 분비되지 못하면 분해되지 않은 유당이 대장까지 가게 된다. 대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유당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미생물들에 의해서 유당이 이용되는 과정에서 포도당, 갈락토오스, 젖산 등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대장의 삼투압을 높여서 대장내의 수분을 높이게 된다. 또한, 미생물의 발효 도중에 수소와 메탄 등 여러 가지 가스성분들이 만들어지면서 속이 점점 불편해지게 된다.

포유류의 젖에는 유당 외에도 지방, 단백질, 비타민 등 다른 영양소들이 많지만 왜 하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유당이 포함된 것일까? 모든 종류의 세포가 가장 좋아하는 포도당이나 과당, 맥아당 등을 젖의 소재로 사용하지 않고, 설사를 유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당을 만들어 새끼에게 먹이는 것은 포유류에게 분명 다른 큰 장점이 있어서 일 터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아직까지 유당이 아닌 다른 당을 주영양원으로 사용하는 포유류는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포유류에게 유당은 다른 당이 대체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성체가 유당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게 되는 성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포유류는 유당과 장내미생물의 콜래보로 인한 유당불내증을 매우 중요한 생존 전략으로 사용하면서 진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유당분해효소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당불내증이 생긴다. 이 유전자는 아기일 때에만 효소로 만들어지고, 어른이 되고 나면 유전자로부터 효소가 발현(유전자로부터 그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이 되고 나면 유당은 더 이상 영양소가 아니라 설사 유발 물질로 전락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해서 아기는 (그리고 모든 포유류의 새끼는) 어른들로부터 귀한 먹을거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니, 유당불내증과 설사야 말로 인류와 모든 포유류가 멸종하지 않게 만들어준 위대한 힘이라 할 수 있다.

모유는 아기에게 단순히 영양소의 공급원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리활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유에는 올리고당(당을 크기에 따라서 단당류, 이당류, 삼당류, 다당류 등으로 구분하는데, 3~6개 정도의 단당류가 서로 붙어 있는 형태)을 매우 많이 함유하고 있다. 우유는 이러한 모유 올리고당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모유 수유가 아기에게 미치는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들이 상당 부분 이런 모유 올리고당에서 기인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모유 올리고당은 유해균들의 번식을 막고, 장내 유익균을 증가시키는 프리바이오틱 효과를 내고, 면역 기능을 증대시키고, 뇌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모유 올리고당을 섭취하였을 때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다양한 기전들 또한 보고되고 있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들은 아기들에게만 국한될 이유는 없다. 프리바이오틱 효과, 면역 증진, 항바이러스 효능 등은 성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유 올리고당은 아쉽게도 우유나 다른 동물의 젖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오직 모유에서만 구할 수 있는데, 포유류의 진화의 과정에서 “젖”은 성체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신성한 것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는 성인에게 좋을 리가 없다. 유당이 성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최근의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이런 귀하고 신성한 것들에 대한 대체재를 어른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푸코스가 붙어있는 푸코실락토스는 모유 올리고당의 주요 성분임에도 불구하고, 우유에는 없기 때문에 이를 대량 생산하여 분유에 첨가하려는 산업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분유에 없는 모유 성분을 첨가하여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영유아의 건강과 발달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인 것이다. 모유 올리고당을 산업적인 스케일로 생산하기 위해서 미생물이 이용되고 있다. 효소공학, 대사공학, 발효공학 등의 기술들을 이용하여 미생물로부터 모유 올리고당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분유에 넣기에도 비싸지만 앞으로 경제적인 대량 생산에 성공한다면 성인들도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섭취할 수 있는 날일 올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의 생명공학 회사들이 모유 올리고당 시장에서 한발 앞서 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회사들도 독자적인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세계 아기들의 건강을 우리 기술로 지킬 수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 아기에게 모유가 최고의 음식이듯 어른에게도 ‘설사’ 대신 ‘건강’을 제공하는 선물을 먹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권대혁 융합생명공학과 교수
권대혁 융합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