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류현주 (hjurqmffl@skkuw.com)

디지털 시대서 과거를 재해석하다
각 세대만의 방법으로
과거 즐기며 소통의 시작 가능케 해

'곰표'가 크게 박혀 있는 점퍼, 투박한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오렌지 주스 등 분명 촌스러운데 왠지 모르게 '힙한' 것들이 주목받고 있다. New-Retro, 뉴트로의 등장이다.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요즘 옛날, 뉴 트로(Going New-tro)'를 지난해 핵심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으며, 이 추세는 2020년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단순한 스타일의 유행을 지나 이제는 우리 사회와 문화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뉴트로에 대해 알아보자.

레트로? 뉴트로!
뉴트로란 새로움을 의미하는 '뉴(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레트로(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뉴트로와 레트로는 향유 주체와 가치로 구분된다.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기성세대가 노스탤지어의 가치를 담아 레트로를 향유한다면 뉴트로는 과거의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가 디지털 시대의 도구를 활용하는 등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향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레트로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 시절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꺼내 그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같은 과거의 것인데 이것을 즐기는 계층에게는 신상품처럼 새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뉴트로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닐 하우,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1980년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나 경제 불황 시기에 청소년기 혹은 성년기를 보낸 세대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해 정보기술(IT)에 능통하기 때문에 '디지털 세대'라고도 불린다. 이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가 뉴트로에 끌리는 이유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담감 대신 검증된 과거를 통해 안정감을 찾으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주는 즐거움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단순 유행을 넘어 문화로
뉴트로 제품의 디자인은 2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다가간다. 첫째, 뉴트로는 헤리티지, 즉 브랜드가 오랫동안 구축해온 가치, 역사, 전통을 시각적으로 복각함으로써 호기심을 유도하고 기념비적인 모델을 소유하는 기회를 제공해 구매 심리를 자극한다. 시그니처 라인 '시마스터' 출시 70주년을 기념하며 복각판을 낸 오메가를 비롯한 스위스 유명 시계 브랜드에서 과거 시계의 복각판을 만들어 내는 현상도 이와 관련된다. 둘째, 뉴트로 디자인은 불완전함이 갖는 미학을 활용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오히려 모자라고 불완전함이 주는 매력에 정신적인 충족감을 느낀다.

패션업계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빅로고', 선명한 색감, 스포티브 룩 등은 뉴트로 패션의 주된 키워드다. 1980년~1990년대 유행했던 코듀로이, 일명 ‘골덴 패션’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서민의 벨벳'이라고 불리던 코듀로이 소재는 방한 기능 등 실용성은 높았지만, 한때 촌스러운 패션으로 평가됐다. 그렇게 소멸됐던 코듀로이 패션이 요즘 뉴트로 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밑창이 투박해 ‘어글리 슈즈’로 불리는 운동화가 인기를 되찾았다. 국내 패션 브랜드 휠라(FILA)가 1990년대에 출시했던 디자인을 재해석해 내놓는 운동화는 지난해 말까지 국내외에서 1000만 켤레 이상 팔렸다. 오래되고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휠라의 이미지가 휠라의 재기를 이끈 셈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식음료 브랜드가 마케팅 목적으로 과거의 패키지를 재해석하여 한시적으로 재출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뉴트로 디자인 패키지 자체에 주목했고, 이는 SNS상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진로이즈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4월 출시된 진로이즈백은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 이상 팔렸다. 임찬휘(영문 19) 학우는 진로이즈백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기존 디자인과 다른 하늘색 병이 새롭게 느껴졌고,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 감성에 맞춘 마케팅 덕분에 눈에 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트로 디자인의 소주는 중장년층에게는 옛 추억을, 청년층에게는 감성을 선물한다.

미디어업계에서는 ‘온라인 탑골공원’이 대세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온라인'과 노년층이 많이 모이는 서울시 종로구의 '탑골공원'을 합친 신조어로, 1990년~2000년대 유행했던 음악방송 영상을 보면서 추억을 공유하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온라인 탑골공원'의 열풍은 SBS가 지난해 8월 유튜브를 통해 과거 음악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7년 개설한 ‘SBS KPOP CLASSIC’ 채널은 원래 구독자가 6만 명에 불과했지만, 뉴트로 열풍으로 누리꾼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후 17만 9000명까지 증가했다. 지금과 달리 발라드보다 댄스에 집중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가수 백지영, 당시 샤크라로 활동하던 배우 정려원의 모습은 10~20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오고, 30~40대에게는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또한 부모 세대의 감성으로 여겨졌던 트로트가 젊은 층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유산슬(유재석)'의 트로트는 거의 모든 연령대를 사로잡았다. 지하철역에 게시된 '미스터트롯' 출연자 광고판에는 수많은 응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3대 팬의 메세지가 보이는가 하면 ‘엄마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응원할 수 있어 좋다’는 젊은 층의 응원 글도 보인다.

이처럼 ‘뉴트로’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이 교수는 “세대별로 향유한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지만 다들 자기 세대 식으로 과거를 즐기는 셈이다. 과거의 아이템을 함께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대 간 소통의 시작을 가능케 한다”며 뉴트로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뉴트로가 세대 간의 가교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BS KPOP CLASSIC' 유튜브 채널에서는 1990년~2000년대 '인기가요' 방송 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있다.ⓒ SBS KPOP CLASSIC 유튜브 채널 캡처
'SBS KPOP CLASSIC' 유튜브 채널에서는 1990년~2000년대 '인기가요' 방송 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있다.
ⓒ SBS KPOP CLASSIC 유튜브 채널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