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용 다큐멘터리 감독, 영상 속에 진짜 사람 이야기를 담다
문창용 다큐멘터리 감독, 영상 속에 진짜 사람 이야기를 담다
  • 정유리 기자
  • 승인 2020.06.01 13:21
  • 호수 16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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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문창용 다큐멘터리 감독

사진 I 박주성 기자 pjs970726@skkuw.com
사진 I 박주성 기자 pjs970726@skkuw.com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전달하는 이야기꾼

오랜 기다림 끝에 예상치 못한 순간을 찍어

 

사람, 자연, 건축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들은 일상의 모습부터 머나먼 공간까지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다. 연기와 연출로 완성되는 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생생한 현실을 포착한다. 문창용 다큐멘터리 감독은 그중에서도 사람 이야기에 집중한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김포의 조용한 카페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삶과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나.
어릴 적 꿈은 가수나 야구선수였어요. 그러나 어떤 꿈도 구체화하진 못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고, 최루탄 가스 냄새가 교실 안까지 진동했어요. 저는 민주화나 데모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몇몇 친구들을 따라 가두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막연하게 기자를 꿈꿨죠.

대학에서는 무역학과를 전공했는데, 1학년 첫 수업 때 배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한다’는 경영학의 기본적인 논리가 싫었어요. 그래서 학과 수업을 잘 안 듣는 대신 학보사에 들어가 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고등학생 때 길거리에서 막연하게 느꼈던 것을 기사로 풀어냈어요. 이때 취재하고 글을 썼던 경험이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됐죠. 그리고 현재까지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어떤 이야기에 집중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쳤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진로를 바꾼 것은 기자가 된 대학 선배들이 기사에 열심히 취재한 내용을 싣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는 것을 봤기 때문이에요. 데스크로부터 검열되는 일이 잦았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마침 방송계에 있던 한 선배의 조언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님 밑에서 1년 간 조연출 생활을 했어요. 다큐멘터리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가려고도 했지만, 실제 촬영을 하다 보니 직접 카메라를 든 채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계속 현장에 남았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해달라.
흔히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고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CCTV가 아니에요. 현장에서 감독이 무엇을 보고 느꼈느냐에 따라서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가 결정돼요. 감독이 집중하고 싶은 것에 따라 한 장면을 클로즈업이나 와이드 샷으로 찍을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 인터뷰를 넣을 수도 있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은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전달하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방송 다큐멘터리는 기사와 마찬가지로 시의성이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빠르게 알아차려야 하죠. 반면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을 주제로 해요.
 

다큐멘터리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은.
작가와 감독이 팀을 구성하고, 기획 의도에 맞춰 시놉시스를 짜고 시청 타깃을 정해요. 그 다음으로 구체적인 출연자, 촬영장소 등을 정하고 기획안을 완성해요. 이후에는 영상의 길이와 구성을 정하고 적합한 매체를 선정해요. 방송 다큐멘터리로 정했다면 방송사 프로듀서에게 기획안을 제안하죠. 10분 길이의 영상은 1주일 정도 촬영을 하고, 1시간 길이의 영상은 2~4주 정도 촬영해요. 3~4부작짜리 대기획은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리죠. 그렇게 방송이 나가고 1개월쯤 뒤에 돈이 들어와요.

 

제작과정에서 자료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에서 자료조사와 고증은 굉장히 중요해요. 국회도서관과 인터넷의 자료부터 전문가 인터뷰와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한 조사까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실을 검증해요. 영문이나 한자로 된 자료도 많죠. MBC 라이프의 ‘철의 문명사 스틸루트’는 A4용지로 출력한 자료가 제 키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양이 방대했어요.

또한 자료조사를 할 때는 유연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조사 결과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르다고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되죠. EBS의 ‘다큐프라임-황금비율의 비밀’에서 초반 기획 의도는 아름다운 예술품과 건축물, 심지어 애플 로고에도 존재하는 황금비율을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자료조사를 진행할수록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애플 로고를 만든 디자이너에게 황금비율을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죠. 결국 초반의 기획을 바꿔 황금비율은 없다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황금비율이 존재한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애플 로고 디자이너의 인터뷰는 싣지 못했겠죠. 취재 과정에서 변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요.
 

제작 현장에서는 어떻게 촬영 대상에 집중하나.
감독은 곤충의 더듬이처럼 감각과 감성의 눈이 활짝 열려있어야 해요. 공기 중의 습기까지 다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스펀지 같은 몸이 돼야 하죠. 촬영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좋은 장면이 나와요. 이 상황에서 대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스스로는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찍어야 하죠.

그렇게 집중해서 촬영을 하다 보면 작가, 카메라 감독, 조명 감독 등 모든 현장 제작진과 출연자가 ‘합이 맞을 때’가 있어요. 출연자가 사전 인터뷰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감정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미리 연출하지 않았는데도 카메라나 오디오도 적절하게 자기 위치에 있어요. 오랫동안 진심을 다해 촬영하고 출연자와 많은 것을 공감하다 보면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돼요. 흔히 말하는 클라이맥스는 여기서 나오죠. 이 직업의 매력 중의 하나는 그런 놀라운 순간을 가장 먼저 보는 거예요.
 

많은 촬영 대상 중 ‘사람’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 이야기가 조금 식상할 수 있어요. 부모·자식이나 연인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된 흔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자신해서 보지 못하는 것도 있어요. 하루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고등어 한 마리를 든 채 집으로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너무 쓸쓸해 보였어요. 그런데 막상 달려가 앞에서 찍었더니 할머니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죠. 집에 가서 손자와 함께 고등어를 구워 먹을 생각이었던 거예요. 이렇듯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각자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에요. 제가 공감하고 인상 깊게 느꼈던 지점을 집중해서 표현해야 보는 사람에게도 잘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대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제 출연자에게 속기도 했어요. 몇 달을 따라다니며 찍었는데 출연자가 했던 말이 거짓이었거나 방송을 이용해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실망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다큐멘터리 감독은 점쟁이 수준으로 관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이 일을 오래 하면 사람의 말투나 작은 행동에서 어느 정도 진심을 볼 수 있어요.

한 번에 섭외가 잘되면 오히려 좋은 장면이 나오기 힘들어요. 그런 출연자는 자기의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오랫동안 따라다녀도 출연자의 껍데기밖에 찍을 수가 없어요. 감독의 입장에서는 답답하죠. 반면 계속 섭외를 거절하는 출연자도 있어요. 그럴 경우 감독이나 작가가 여러 번 찾아가면서 설득을 해요. 어렵게 승낙을 받아낸 사람의 이야기를 찍으면 더 좋은 장면, 더 진실한 모습을 담을 수 있어요. 어려운 길이 나중에는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죠.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것과 다른 점은 없었나.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도 좋은 출연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짧은 영상 속에 진정성 있게 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현장에서 분명히 보고 느낀 메시지를 영상에 온전히 담아내기가 힘들었어요. 시청률이나 윗선의 의견 때문에 열심히 촬영한 것을 영상에 담지 못할 때 갈등도 많이 했고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사람 이야기를 담는 것인지 컨베이어 벨트에서 벽돌을 찍어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한번은 외국에 한 오지마을에 촬영을 하러 갔더니 한국에서 취재했던 내용과 완전히 다르고, 현지 코디네이터가 했던 말이 다 거짓인 적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정해진 기한까지 방송은 나가야 하죠. 그럴 때면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해서든 영상물을 만들어냈지만 진실된 이야기는 담기 어려웠어요. 한국에 돌아오면 영상을 편집해놓고 돌아볼 틈도 없이 다시 해외로 촬영을 나가는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이런 상황에 회의를 느끼던 와중에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됐죠.
 

첫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방문한 인도 히말라야산맥의 고산지대 라다크에서 우르갼 스님과 앙뚜를 만났어요. 당시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회의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죠. 이때 우르갼 스님과 앙뚜의 특별한 관계가 저의 눈길을 끌었어요. 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는데, 부모도 아닌 우르갼 스님이 앙뚜를 많이 아꼈어요. 첫 만남으로부터 몇 달 후에 앙뚜가 *린포체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 둘의 특별한 관계를 앞선 경험처럼 짧게 혹은 껍데기만 찍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랫동안 촬영하고 변화한 모습을 담고 싶어 이들을 8년 동안 찍었어요.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 줄은 몰랐어요. 관객이 이들의 이야기를 큰 스크린에서 좋은 오디오로 집중도 있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영화로 제작했어요.
 

어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우선은 사람 이야기를 편견 없이 잘 만드는 감독으로 남고 싶어요.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고 경계하잖아요. 사람들의 표정과 활력, 그 속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사람이 사실은 보석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감독은 돈도 못 벌고 고생만 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실제로도 제작환경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고요. 방송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비중은 커졌지만,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많이 줄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는 필요해요. 기록물이기 때문에 현재는 르포이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린포체=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교의 고승.

문창용 감독의 '다시 태어나도 우리'.ⓒ소나무 필름 제공
문창용 감독의 '다시 태어나도 우리'.ⓒ소나무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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