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채은 (ohche@naver.com)

공익법인의 의무 공시와 외부회계감사 대상 확대돼
기부금 사용에 끝까지 관심 가져야

지난달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더 이상 수요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전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금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선 발언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모금을 해온 시민 단체의 기부금 사용 투명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부금 사용 불투명성이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지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으로 생겨난 기부포비아
매년 발표되는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은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는 이유의 일정 부분을 꾸준히 차지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기부포비아를 형성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2017년 이영학 씨는 희귀병에 걸린 딸의 수술비가 필요하다며 기부 단체와 개인 모금을 통해 약 10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기부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같은 해 새희망씨앗은 아동후원의 목적으로 약 127억 원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실제 소외계층아동을 위해 사용한 금액은 2억 원에 불과했다.
 

기부금품법의 모집 등록 관리 어려워
기부금의 사용 규제는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기부금품법과 국세청의 공익법인 관리·감독으로 나뉜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연간 누적 1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목표로 모집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관할 부처에 모집 등록을 해야 한다. 이는 1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집하려는 개인과 단체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모집 등록 규제는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재단법인 동천(이사장 차한성) 정순문 변호사는 “기부금품법 ‘모집 행위’의 정의가 애매해서 모집 등록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부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 단체를 알게 되면서 후원하는 경우는 모집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돼 해당 단체는 모집 등록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단체의 소속원으로부터 모금하는 것도 모집 등록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소속원’에 대한 법률적 해석이 모호하기 때문에 모집 등록 대상 여부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단체의 후원 회원이 모두 기부금품모집법상 소속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용어 해석이 모호하고 모집 등록 절차도 복잡해서 소규모 기부 단체는 모집 등록을 잘 안 하게 됐다”고 전했다. 기부금품법의 모집 등록 규제와 국세청의 관리·감독의 대상이 혼재돼 모집 등록 여부를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정 변호사는 “기부금품법의 모집 등록 규제는 공익법인에 적용되는 국세청의 관리·감독과 중복 규제라는 비판이 있어 상대적으로 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익법인 공시의 행정적인 문제 존재해
한편 기부금품법뿐 아니라 국세청의 관리·감독 체계로도 기부금 사용을 관리하기 어렵다. 주로 국가보조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공익법인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단체의 공익사업, 자산현황 등에 대한 결산서류 △기부금품 수입 및 지출 명세서 △출연재산의 공익목적사용 현황 등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이렇게 관리되는 공익법인은 자산 5억 원 이상 또는 연 수입 3억 원 이상의 법인뿐이었다. 국세청의 ‘국세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공익법인 약 3만 5천 개 중 결산서류 공시 의무를 가진 공익법인은 약 26%였다. 외부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공익법인 대상도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지난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하면 자산 100억 원이 넘는 공익법인만 외부회계감사를 받으면 됐다. 국세청 공시자료의 회계감사여부에 의하면 지난해 공시 공익법인 9663개 중 외부감사를 받지 않은 법인은 전체의 60.5%를 차지했다.

공시 의무가 있는 공익법인이 공시 항목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아 공시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다양한 분야의 공익법인에 적용할 수 없는 공시 서식의 문제점과 공익법인 내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나타난다. 공익법인의 투명성 및 효율성 평가를 위한 민간 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이사장 최중경)에 따르면 필수적으로 지출되는 인건비조차 0원으로 공시하는 공익법인들이 존재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이사장 이은정)의 이총희 회계사는 “현재 공익법인의 공시 서식은 수혜자 수를 기재하게 돼 있지만 이는 대상자가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경우에만 적절한 양식”이라며 “다양한 공익법인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공익법인의 공시는 비슷한 내용의 서류를 국세청, 행정안전부, 주무관청 등 여러 곳에 제출하며 이뤄져 공익법인 내의 행정력이 낭비된다. 이에 대해 한국공익법인협회 김덕산 회계사는 “소규모 시민단체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기부금 사용 투명성을 위한 제도 변화의 움직임
최근에는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제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자산과 연 수입과 관계없이 모든 공익법인이 의무공시의 대상이 됐다. 외부회계감사 대상에도 자산 100억 원 이상 공익법인이라는 기준에 더해 연간 수입금액이 50억 원 이상 또는 기부금이 20억 원 이상인 공익법인도 외부회계감사를 받아야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이에 대해 김 회계사는 “공익법인들은 당장 외부 감사인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며 “외부회계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을 기존의 3월에서 6월로 늘리는 것이 좋다”며 바뀐 규제에 대해 조언했다. 또한 최근 행정안전부는 기부금품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주체가 기부금의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할 것을 의무화하는 ‘기부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부자들이 단체의 기부금 사용에 관심 가져야 해
기부금의 사적 사용 방지를 위한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모든 사례를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기부자 스스로 기부 단체의 기부금 사용처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투명한 기부처를 고르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가 잘 이루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회계사는 “기부 내역에 대한 공개가 이뤄지는지, 정보 공개의 주기가 어떤지 등을 확인해 내용이 자세하고 빈도가 잦을수록 투명한 기부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회계감사는 회계처리에 대한 부분만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을 막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이며 기부금 사용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기부포비아=기부금의 정확한 사용처를 알 수 없어 기부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부 공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