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대학에는 서울과 수원, 두 곳에 캠퍼스가 있다. 명륜에는 주로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그리고 예술 분야의 학과가, 율전에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 그리고 스포츠 분야의 학과가 있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명륜에는 문과, 그리고 율전에는 이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명륜 캠퍼스를 인사캠, 율전 캠퍼스를 자과캠으로 줄여 부르는 이유다.

<코스모스와 인간> 수업을 양 캠퍼스에서 각각 개설해 진행한 경험이 있다. 과학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을 골라, 한 학기 동안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매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렸더니, 자과캠 학생들의 상당수가 첫 주에 수강을 취소했다. 한편, 인사캠에서는 수강취소를 한 학생이 단 한명도 없었다. 자과캠 학생들 다수는 토론하고 글 쓰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공계 수업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해할만한 불편함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이공계 학생에게는 생소한 요구다. 자과캠 학생이 나면서부터 인사캠 학생과 달랐을 리는 전혀 없다. 나면서부터 문과인 사람도, 이과로 태어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중고교 시절의 짧은 학업 경험과 어렴풋한 주변의 짐작에 기대어 문과, 이과를 일단 고르고 나면, 선택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제약이 된다. 문과 학생에게 물리학은 딴 세상 얘기다. 왜? 난 문과니까. 이공계 대학생에게 철학은, 몰라도 그만인 선택적인 지식일 뿐이다. 왜? 난 이과니까. 선택은 구별이 되고, 구별은 제약이 된다. 

1959년 <두 문화와 과학혁명>을 출판한 스노우(C. P. Snow)는 과학 문화와 인문 문화사이의 분열과 괴리를 이야기했다. 인문적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과학 문화를 등한시하는 것을 주로 문제 삼았다. 60년 전에 스노우가 제기한 두 문화 사이의 괴리의 문제는 이후에도 전혀 극복되지 못했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문이과로 학생을 나눠 오래 교육한 우리나라, 지리적으로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는 우리대학에서 두 문화 사이의 괴리는 더 심각할 수 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고교에서의 문이과 구별이 이미 폐지되었고, 문이과 구별 없는 글로벌 융합학부의 신입생이 내년에 우리 대학에 입학한다. 융합학부의 학생이 아니라도, 오랜 역사를 가진 기존 학과의 학생들에게도 융합교육은 필요하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경험하게 하고, 하루가 멀다고 등장하는 과학기술의 성과를 성찰하는 교육이 인사캠 학생에게 필요하다. 과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이 갖춰야하는 핵심교양의 하나라는 것이 내 믿음이다. 자과캠 학생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책에 실린 지식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공계 대학생의 인문교육의 출발은 읽고, 토론하고, 쓰는 형식의 교육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읽은 것을 다른 이에게 말해보고 다른 이의 말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는 토론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이해가 깊어지고, 그렇게 깊어진 이해는, 써보는 성찰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것이 된다. 깊고 폭넓은 성찰 없이, 전공 지식에만 매몰된 사람은 결국 ‘지식인 바보’가 된다. 자신의 전공 지식이 세상과 어떻게 관련되는 지를 고민하는 것은 모든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