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돌물목이란 어떤 뜻이지? 초임 교수 시절 구입한 우리말 큰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단지 돌물이란 단어만 있을 뿐이다. 돌물이란 소용돌이치는 물의 흐름이라고 되어 있다. 목은 추석 대목이라든지 병목현상이라는 단어에 들어 있다.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중요하고 좁은 곳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돌물목이란 물흐름이 거센 좁은 곳을 의미할 것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면 청소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일 것이고, 이는 대학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내게는 어림잡아 40년이 넘을 것이다. 대학 4학년 1학기가 80년 봄이라 불리던 시절이었고, 시내까지 행진하여 서울역 근처에서 집회를 했던 기억도 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과 대규모의 검거가 있은 후 이러한 일은 잦아들었다. 나는 58년 개띠로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어릴 적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저학년 때에는 2부제 내지 3부제 수업을 하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는 폐지되어, 중학교는 무시험 2기로 진학하였고, 고등학교는 무시험 1기로 진학하였다. 아쉽게도 대학 입시는 폐지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커가면서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시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58년생이 수적으로 많다고 하지만 90년대 생들과 비교해보면 그 당시의 경쟁은 경쟁의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열반 편성도 있었고, 야자도 있었다. 조회 시간에는 야자 땡땡이에 대한 타작도 있었다. 세월은 흘러 대학 졸업이 가까워 왔고, 나의 초등학교 친구들의 대다수는 취업의 길을 택했지만, 나는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취업의 문은 좁지 않았고, 지금과 같이 많은 스펙이 요구되지도 않았다. 취업 문을 통과하지 못한 친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갔고, 유학을 마치자마자 공백 없이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지 몰라도 개인적인 운보다는 시운이 좋았던 것이다. 살면서 가장 노력을 많이 한 때는 초임 교수 시절이었다. 박사 논문은 썼지만 폭넓게 공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준비가 많이 필요했었다. 덕분에 공부하는 습관을 붙일 수 있었고,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세상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40년 전과 현시점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모두에게는 역병 대비의 과제가 있지만, 돌물목의 학생에게는 취업의 과제가 있다. 예외는 있겠지만 취업이란 성인의 삶에는 필수적이다. 자신에게 보람이 되는 일을 찾아내어 그에 매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제일 먼저 직종을 선정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발품도 팔아야 할 것이다.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숙고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노력이다. 구직이란 자신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구매자의 이목을 끌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지만 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취업이란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문제인지만, 실감의 정도가 낮을 수도 있다. 나는 로스쿨이라는 전문대학원 교수로서 신입생들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다. 2가지이다. 아마 학부생들에게도 준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이야기이다. 달리기 시합에서 일찍 출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크게 보아 로스쿨생은 법조인을 목표로 삼지만 법조인의 종류도 판사, 검사, 변호사, 경찰, 공무원 등 다양하고, 세부적인 로드맵에는 차이가 있다.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생활의 근거지를 캠퍼스로 잡으라는 것이다. 유사한 목표를 잡은 동료들과 더불어 추구하라는 것이다. 뭉치면 서로에게 위안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스터디그룹도 필수적일 것이다. 우리 학교는 성균인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직 이루지 못한 학생을 인재로 키워서, 고르지 못한 풍속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돌물목에서 본인의 미래상을 잘 구상하여 성취하기를 바란다.

 

최봉철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최봉철 교수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