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류현주 (hjurqmffl@skkuw.com)

사학과 전공과목을 공부하며 가끔 100년, 200년 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들의 기행은 ‘정말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수순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때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현재’는? 만약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미개하고 역겹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 시대의 상황은 그저 주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분명 과거보다 뛰어난 현재에 살고 있다. 언제나 현재는 과거보다 개선되고, 발전된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가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명제 하에 ‘미래’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는 ‘과거’다. 그리고 정세랑 작가는 나의 불안한 의문에 상상력을 붙여 세계를 창조했다.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수록된 '리셋'과 '7교시'에는 미래 세대가 평가한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 나와 있다. 

‘재고 창고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재고라는 개념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7교시'를 읽으며 어쩌면 ‘재고’라는 개념이 미래 세대에게는 미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는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생산돼 어딘가에 쌓여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안도감일 테다. 물론 같은 행성의 다른 종을 착취하며 얻은 풍요를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다. 나 역시 일회용품의 달콤함을 잘 아는 자취생이자, 기분 좋은 날이면 ‘고기 먹으러 가자!’라고 외치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책 속의 미래사회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육식 중심의 식습관을 ‘배양 단백질’이 없었던 때였으며, 집단의 문화를 개인이 전복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끊임없이 역겨워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는 다른 종의 생명권이 고려되기 ‘시작’한 사회였다. 

주변에 채식을 하는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나는 그 친구의 결단력을 높이 산다. 우리 사회는 아직 채식을 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나 역시 그 친구의 갸륵한 마음을 닮고 싶어서 지난 신문사 방중활동 점심에 샐러드를 주로 시켜 먹었다. ‘채식’을 위해 샐러드를 먹어보겠다고 발언하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지키지 못한다면 생길 죄책감이 두려워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조용히 왠지 모를 선구자가 된 우월감과 자만심을 갖고 샐러드를 먹던 순간 기묘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400년이 지나도 지구에 흡수되지 못할 플라스틱에 둘러싸인 나의 샐러드. 

책을 읽는 내내 설레면서도 오싹했다. 작가의 상상력은 분명히 빛났지만 왜인지 머지않은 미래를 내다보고 글을 쓴 듯한 작가의 통찰력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2018년 11월에 발표된 7교시에 ‘2098년에 지독한 돌연변이가 일어나자 …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아시아의 독재 국가가 WHO에 발병을 숨겼던 것 역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작가의 상상 속 2098년은 현실인 2020년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느낀다. 우리는 앞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그저 허무맹랑한 망상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당하게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발상을 지탄할 수 있을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부디 우리의 삶이 미래세대에게 역겨운 역사로 다가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류현주 부편집장 hjurqmffl@skkuw.com
류현주 부편집장 hjurqmffl@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