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수진 기자 (waterjean@skkuw.com)

항원·항체의 유무로 결정되는 혈액형
환자의 증상에 따라 필요한 혈액제제 사용해

오는 10월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병원 대상으로 실시하는 '수혈 적정성 평가'가 시작된다. 이 평가는 고질적인 혈액 수급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수혈 체크리스트 보유 유무, 수혈 전 빈혈 교정률 등을 지표로 한다. 이처럼 남용되는 혈액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중 무수혈 치료는 수혈 부작용을 줄이고 혈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무수혈 수술을 중심으로 수혈 없이 환자를 치료하는 무수혈 치료에 대해 알아보자.

수혈의 위험성을 예방하는 무수혈 
무수혈 치료란 치료의 전 과정에서 혈액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환자 체내에서 혈액을 만드는 능력을 향상시켜 빈혈 상황에 적절한 처치를 시행하는 치료다. 무수혈 치료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 시행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혈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를 대상으로도 무수혈 치료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수혈을 제한하여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수혈 부작용과 수혈 전파성 감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수혈 치료의 핵심은 ‘무수혈 수술’이다. 무수혈 수술은 일반 치료와 달리 혈관이 많이 분포되지 않은 조직을 절개하는 등 추가적인 기술이 요구돼 일반 치료와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지켜라
성공적인 무수혈 수술을 위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산소 운반 능력 극대화 △출혈량 최소화 △혈액 생산 촉진 총 세 가지다. 이 목표에 따라 단계를 나눠 수술을 계획한다. 수술 전 단계에는 환자의 혈액을 무수혈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만든다. 이 단계에서는 수술 중에 환자의 몸이 기능을 유지하도록 세포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산소 운반 기능을 담당하는 적혈구의 수치를 높여준다. 

환자의 적혈구 수치를 목표에 도달시키기 위해서는 적혈구를 만드는 재료인 철분과 적혈구의 생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을 제공해야 한다. 헤모글로빈 분자 한 개는 4개의 철분 원자로 구성되는데 이 원자에 산소가 결합돼 운반된다. 즉 철분이 부족하면 산소를 운반할 일꾼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는 수술 약 한 달 전부터 고용량 철분 주사제로 철분을 투여 받게 된다. 충분한 철분이 준비된 이후에는 조혈제를 투여해 적혈구를 생성한다. 조혈제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 다베포에틴 등이 있으며 조혈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다. 이런 호르몬은 주로 골수에 작용해 적혈구의 생성을 촉진한다. EPO는 주로 신장에서 생산되는 조혈 호르몬이며 다베포에틴은 EPO의 구조를 변형한 제제로 *반감기가 비교적 긴 것이 특징이다. 산소 운반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철분제와 조혈제를 병행해서 투여해야 한다. 수술 중에 잃는 적혈구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혈액 희석법이 있다. 혈액 희석법은 수술 전 환자에게 수액을 투여해 의도적으로 혈액의 양을 정상 수치보다 늘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수액으로 인해 혈액의 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잃는 적혈구의 수가 감소한다. 동시에 모세혈관까지 혈액이 윤활히 흐르게 돼 산소 운반이 개선된다.

적은 출혈이 무수혈 수술의 목표
무수혈 수술 중에는 출혈량을 최소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수술을 진행한다. 따라서 수술은 최소 침습적 접근법으로 진행한다. 여기서 침습이란 체외의 세균이 체내의 조직 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절개하는 부위가 넓을수록 세균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져 최소한의 절개로 최소 침습을 추구한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박선영 교수는 “예를 들어 복부에 작은 구멍을 통해 기구를 넣어 진행하는 복강경 수술이 가능하다면 근육과 복막까지 전부 절개하는 개복술보다는 복강경 수술을 선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수술 부위를 절개할 때는 전기 소작기와 국소 지혈제를 사용해 절개와 동시에 지혈을 진행한다. 전기 소작기는 고주파를 이용해 절개와 지혈을 함께 할 수 있는 기구며 국소 지혈제는 절개 부위의 혈액 응고를 돕는 약제다. 무수혈 수술은 마취방법에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환자를 마취하는 환경에 따라 출혈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마취방법으로는 유도 저혈압법과 저체온법이 병행된다. 유도 저혈압법은 혈압을 낮춰 새어나오는 혈액의 양을 줄이는 기법이다. 저체온법은 *PVC 필름 등으로 환자의 체온을 낮추고 생체의 대사와 산소 필요량을 감소시켜 장기가 저산소 상태에 버틸 수 있도록 해 수술 시간을 연장시킨다.

영남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재민 교수는 “출혈량이 많은 경우 자가 혈액 회수기(셀 세이버)를 활용해 수술 중 환자로부터 흘러나온 혈액을 모아 다시 수혈한다”고 말했다. 자가 혈액 회수기는 수술 중 발생한 출혈을 수집하는 것을 첫 단계로 한다. 수집한 혈액은 장치 내에서 응고되지 않도록 항응고제를 첨가한 후 저장소로 보내진다. 이렇게 저장된 혈액은 세포 회수기로 가 뼛조각, 노폐물이 제거된 뒤 세척된 적혈구만 재주입 용기로 보내진다. 이후 적혈구는 사전에 채취한 혈소판, 혈액응고인자와 함께 환자에게 되돌려진다. 이 방법은 환자의 혈액만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어 출혈이 많은 정형외과 치료, 암 수술 등에서 활용된다. 수술 후의 모니터링도 성공적인 무수혈 수술의 마무리를 위해 중요하다. 수술 후에는 빈혈 수치를 확인하고 지혈제와 철분제를 투여해 환자가 정상적인 적혈구 수치를 회복하도록 한다. 환자 맞춤형으로 적절한 수액과 산소도 공급한다. 또한 수술 부위의 출혈 경향을 세심하게 관찰해 수술 중 놓친 출혈 지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급상황에 대처한다. 환자의 경과를 분석하기 위해 혈액 샘플을 채취하기도 한다. 이때는 미소량 혈약 샘플 채취법을 이용한다. 1mL 미만의 혈액으로 검사하므로 의사에 의해 초래되는 빈혈인 의원성 빈혈이 예방된다.

무수혈 치료의 미래 
우리나라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7g/dL이하일 때, 출혈이 전체 혈액의 30% 이상인 경우에만 수혈하라는 수혈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적혈구제제 공급량은 41유닛으로 혈액 사용량이 적은 캐나다에 비해 약 2배가량 높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혈액의 남용을 줄일 수 있는 무수혈 치료는 연구할 가치가 충분한 분야다. 이 교수는 “아직은 무수혈 치료의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지만 수술 기술의 발전으로 최소 침습적인 시술이 늘어나고 수술할 때 출혈량도 적어지는 추세에 있다”며 무수혈 치료의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감기=어떤 물질의 양이 초기 값의 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PVC 필름=폴리염화비닐로 의료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합성수지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