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수진 기자 (waterjean@skkuw.com)

혈액형 맞춘 수혈로 동물의 생명을 살려

공혈견 비율 줄이기 위해선 헌혈견 문화 정착 필요해

지난해 검역본부에서 시행한 ‘2019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26.4%다. 이는 2018년보다 약 80만 가구가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반려동물은 오늘날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려동물 수가 증가함에 따라 반려동물 치료의 중요성 또한 커졌다. 이는 곧 치료에 필요한 동물 혈액의 수요가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동물의 수혈과 혈액 수급은 어떻게 이뤄질까.

동물도 수혈이 필요하다 
혈액이 부족할 때 우리는 수혈을 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종양, 비장 수술과 같이 대량 출혈이 발생하는 외과수술을 비롯해 *양파 중독, *바베시아증 등의 내과 질환이 발병하는 경우 수혈이 필요하다. 안전한 수혈을 위해서는 동물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혈액형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도 사람처럼 수혈을 받는 동물의 항체와 수혈되는 혈액의 항원이 결합해 혈관을 막는 ‘항원-항체 응집반응’이 일어난다. 이 반응으로 인해 쇼크가 오면 심각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려견은 약 598만 마리로 가장 많이 기르는 동물로 추정됐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동물 수혈의 주 연구대상이다. 개는 DEA형(Dog Erythrocyte Antigen, 개 적혈구 항원) 혈액형 체계를 가진다. DEA 혈액형에는 수혈에서 중요한 DEA 1.1형, DEA 1.2형 외에도 DEA 7형 등 총 13가지의 혈액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의 수혈에서 주목할 점은 혈액형과 관계없이 최초 수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마루동물병원 김현욱 대표원장은 “개는 태어날 때 타 적혈구 항원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개는 첫 수혈 시 혈액형이 다르더라도 응집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수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원장은 “혈액형이 다른 경우 수혈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고 재차 수혈부터는 혈액형을 맞춰야 한다”며 “이는 응급 상황에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동물 혈액의 수급과 공혈동물 
현재 우리나라의 동물 혈액은 대부분 민간 기업인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동물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공혈동물은 다른 동물의 치료에 필요한 혈액을 제공하는 동물이다. 혈액 수급이라는 의료적 필요성으로 인해 공혈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동시에 동물 복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혈동물의 보호와 건강 관리가 철저히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동물권 문제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공혈은 대규모 사육이나 제한적인 외부 활동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나이가 많아 공혈을 하지 못하게 된 은퇴견의 처우 문제도 숙제로 남아있다.

공혈동물의 처우 개선을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은 경제적인 측면이다. 동물 혈액을 공급하는 유일한 단체가 민간기업이므로 회사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혈동물을 사육하는 시설을 보완하고 복지를 개선할수록 혈액의 단가는 올라간다.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이학범 대표는 “혈액 단가의 상승은 결국 진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진료비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동물 복지 간의 적정수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안전한 헌혈을 위한 가이드라인
공혈동물 제도의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것이 동물 헌혈이다. 동물 헌혈은 헌혈 요건을 만족하는 반려동물로부터 혈액을 얻는 것이다. 전체적인 과정은 사람과 비슷하며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헌혈을 접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헌혈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나이 △체중 △헌혈 기간 등의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헌혈견은 몸무게 25~28㎏ 이상의 2~8세의 모든 품종을 대상으로 한다. 헌혈 간격은 최소 3개월을 충족해야 한다. 한 번 헌혈할 때 채혈하는 양은 체중 및 혈관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체중에 따라 혈액 총량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채혈량을 고려하지 않으면 과도한 채혈로 인해 혈액량이 부족해져서 쇼크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원검사 키트로 확인하는 심장사상충 검사나 진드기 감염체를 검출하는 PCR 검사와 같이 혈액에 대한 전반적인 검사도 진행된다. PCR 검사는 적은 양의 DNA만으로도 바이러스를 효율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복잡하고 큰 전체 유전자 중에 찾고 싶은 DNA 부분만을 수십만 배로 증폭할 수 있어 빠른 병원체 검출을 가능하게 한다. 확보된 동물 혈액은 △공혈견 정보 △채혈 △혈액형 날짜를 표기해 혈액 냉장고에 보관한다. 이 혈액은 이후 표기된 정보를 확인하고 수혈에 적합한지 교차 반응 검사를 실시한 후 수혈된다. 

첫걸음을 내딘 우리나라의 동물 헌혈
해외는 공혈과 헌혈 시스템이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폴란드는 헌혈 문화가 보편적이어서 반려동물 헌혈센터가 존재한다. 미국은 NAVBB(북미 수의사 혈액은행)과 같은 자선 단체가 동물 헌혈을 실시해 수혈에 필요한 동물의 혈액제제를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동물도 수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해 동물 헌혈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체중이 적어 채혈이 어려운 소형견의 비율이 높아 헌혈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의 헌혈 확산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창단한 ‘한국헌혈견협회’는 헌혈견 지원센터 설립을 목표로 헌혈 활동과 헌혈견을 지원하고 있다. 김 원장은 “동물 헌혈이 보편화돼 공혈 제도의 필요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양파 중독=양파를 섭취한 개가 위장염 증상, 용혈성 빈혈 증세를 보이는 것.

*바베시아증=혈액 속에 기생하는 바베시아라는 원충에 감염돼 중증의 빈혈이 일어나는 질병. 

 

개의 혈액을 채혈 중인 사진.ⓒ해마루 이차진료동물병원 제공
개의 혈액을 채혈 중인 사진.
ⓒ해마루 이차진료동물병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