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민정 기자 (0614smj@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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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원·항체의 유무로 결정되는 혈액형

환자의 증상에 따라 필요한 혈액제제 사용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 19)로 헌혈자가 줄어 수혈에 필요한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뉴스를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 1~5월 사이 개인 헌혈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만 3000여 건, 단체 헌혈은 6만 8000여 건 감소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헌혈의 필요성에 대해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헌혈에서 수혈에 이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헌혈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는 지금, 생명을 살리는 기술인 수혈과 헌혈에 대해 알아보자.

수혈과 헌혈, 그 시작
수혈이란 과다 출혈이나 백혈병 등의 이유로 부족해진 혈액의 혈구와 혈장 성분 등을 타인으로부터 공급받아 보충해 주는 과정을 일컫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최초 수혈은 1818년 런던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블런델에 의해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혈액형 개념이 없어 많은 사람이 수혈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했다. 1901년이 돼서야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현대 혈액형의 기초인 A, B, C형(지금의 O형)을 발견하며 혈액형에 관한 연구가 시작됐다.

수혈 시행 초기에 병원은 피를 사고파는 매혈을 통해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수급했다. 하지만 1974년 4월 1일 세계 헌혈의 해를 맞아 각국 적십자혈액원은 생명윤리 등의 이유로 매혈을 폐지했다. 이때부터 혈액 수급은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혈액을 무료로 제공하는 헌혈로만 이뤄지게 된다. 우리나라 또한 전국에 적십자혈액원을 창설해 1975년 10월 이후에는 혈액 수급을 헌혈로 국한했다.

수혈의 핵심인 혈액형 항원·항체
항원은 자기와 다른 물질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인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분자다. 외부에서 항원이 들어오면 항체는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생성된다. 그중 혈액형 항원과 항체는 태어날 때부터 각각 적혈구의 표면과 혈장에 존재한다. 자신이 어떤 혈액형 항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혈액형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A형 항원을 가지고 있으면 A형, 아무 항원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O형이다. 이들은 수혈자의 몸속에 존재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혈을 통해 타인의 혈액형 항원이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 수혈자의 혈액형 항체와 만나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은 주로 적혈구의 응집으로 나타나 혈액 순환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이 때문에 혈액형 항원과 그에 대응하는 항체의 존재 여부, 즉 혈액형은 수혈의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임상적으로 중요한 혈액형 항원군은 대략 20개 정도로 △Duffy 혈액형군 △Kidd 혈액형군 △RhCE 혈액형군 등이 있다. 강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혈액형 항원군은 흔히 알려진 ABO 혈액형군과 Rh 혈액형군이다.

이러한 항원-항체 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가 바로 ‘수혈 전 검사’다. 우리나라에서는 △ABO 혈액형 검사 △RhD 혈액형 검사 △비예기항체선별검사 △교차시험 총 네 가지 검사를 한다. 가장 중요한 ABO 혈액형과 Rh 혈액형을 먼저 검사하고 나머지는 비예기항체선별검사로 걸러내는 방식이다. 비예기항체선별검사로는 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Duffy 혈액형, Kidd 혈액형 항체 등을 판별한다. 마지막에 시행하는 교차시험은 총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전 검사로 걸러내지 못한 항체가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한다. 한편 혈장만을 수혈할 경우 그 위험도가 낮아 교차시험을 실시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 진단검사의학과 조덕 교수는 “응급상황에는 이런 검사의 일부 혹은 전부를 생략하고 혈액제제 출고 이후에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주대 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북한 병사 응급 수술 당시에는 O형 적혈구를 검사 없이 바로 수혈하기도 했다.

필요한 혈액 성분만 골라 수혈하는 성분수혈
수혈이라고 하면 보통 전체 피를 수혈하는 전혈을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에는 필요한 혈액 성분만 수혈하는 ‘성분수혈법’을 사용하고 있다. 성분수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혈액을 각 혈액 성분별로 나눈 혈액제제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혈액은 원심분리법을 이용해 성분별로 분리된 후 △적혈구제제 △혈소판제제 △혈장제제로 제작된다. 적혈구제제는 혈액량을 보충하고 산소 운반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사용되며 혈소판제제는 혈소판 감소 혹은 혈소판 기능 이상에 의한 출혈 증상의 치료 및 예방에 사용된다. 혈장제제는 혈액응고인자를 보충한다. 조 교수는 “보통 적혈구제제가 가장 많이 수혈된다”라며 “대량출혈일 경우에는 적혈구뿐 아니라 혈장까지 함께 수혈해야 하고, 골수이식이나 백혈병 치료를 할 때는 예방적으로 혈소판을 수혈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수혈과 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헌혈 혈액
성분수혈 시행에 따라 헌혈 또한 전혈헌혈과 혈액제제 제작이 더욱 용이한 성분헌혈로 나뉜다. 전혈헌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헌혈이며 성분헌혈은 성분채혈기를 이용해 혈소판과 혈장, 혹은 둘 다를 채혈한 후 나머지 성분을 헌혈자에게 되돌려주는 헌혈이다. 헌혈하기 전에는 헌혈자와 수혈자의 건강을 위해 전자문진을 한 뒤 문진 간호사와 문진 사항을 다시 확인하고 헌혈 전 검사를 한다. 헌혈 전 검사는 순서대로 △맥박·체온·혈압 측정 △혈액형 검사 △혈액비중 검사 △혈소판 수 측정이 있다. 이 중 혈액비중 검사는 헌혈하기에 충분한 혈액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산소 운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 수치를 측정하는 검사로, 간단하게 황산구리수용액과 혈액의 비중을 비교해 측정한다.

이렇게 헌혈 받은 혈액은 대부분 수혈을 위해 의료기관에 공급되고 수혈용 이외의 혈장제제는 *혈장분획센터로 옮겨져 의약품 제조용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코로나 19의 혈장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코로나 19 완치자 혈장 공여를 모집하고 있다. 혈장 치료는 특정 바이러스 항원을 겪은 사람의 혈장에 해당 바이러스의 항체가 형성된다는 점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확실한 코로나 19 치료제가 없는 현 상황에서 하나의 수단으로써 시도되고 있다.

수혈과 헌혈의 현재와 미래
사실 헌혈자가 감소한 것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만 16~69세에 해당하는 헌혈 가능 인구가 고령화·저출생 현상으로 지속해서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청년층의 헌혈 비율이 높아 그 영향은 더욱 크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수혈 최소화를 위해 *환자 혈액 관리(PBM)와 무수혈 치료, 인공혈액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조 교수는 “환자 혈액 관리 개념이 도입되면 기존 수혈 관행을 벗어나 환자 개개인에 적합한 수혈을 해 환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수혈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 교수는 헌혈에 대해서 “먼 미래지만 검사로 혈액을 선별하는 것이 아닌 혈액 내 균을 제균하는 방법이 고려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헌혈자에 대한 규정도 완화되리라고 본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혈장분획센터=혈장을 가공해 혈장분획제제를 생산·공급하는 시설.

*환자 혈액 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국제환자혈액관리재단이 주장하고 있는 개념으로 환자 자신의 혈액을 보존·사용함으로써 수혈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