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 근데, 나 여자 좋아해.” 커밍아웃을 들었던 처음 들었던 순간은 고등학생 때였다.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친구가 대담하게도 교실 한복판에서 커밍아웃한 것이다. 쉬는 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애 문제를 토론하던 아이들 속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터진 말이었다. 몇 초 전만 해도 자유롭게 대류 하던 공기가 급속도로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진공 상태에서 모두가 어안이 벙벙할 때, 그 애는 담담하게 자신의 첫사랑 여자애 얘기를 시작했다. 이윽고 진공 상태가 깨지고 질문들이 사뿐사뿐 도착했을 때도 그 애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을 해줬다. 자신이 다른 성별도 좋아하고 같은 성별도 좋아한다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 마냥.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그 애는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고, 난 대학생이 되었다.

광기의 미술 입시가 끝나고 행복하게 뒹굴뒹굴하는 나에게 스마트폰은 새내기가 응당 즐겨야 할 의무 리스트를 대령했고, 나는 결국 결심했다. 참은 만큼 놀자고. 물론 모든 새내기가 했을 생각이지만, 벽장 안 퀴어였던 나에게는 큰 도약이었다. 열렬한 구애 끝에 여자 친구도 사귀고, 자유롭게 터놓고 이야기할 퀴어 친구들도 생겼다. 그러나 놀 거 다 놀고, 칠 사고는 다 쳐보니까 다시 답답해졌다. 결국 나는 한정된 공간과 관계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평범하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와 숨겨야만 존재할 수 있는 세계가 양분되어 있다니. 부당함을 인식하니 억울했고, 억울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더욱 제멋대로 살기로 했다. 더 넓은 차원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서 밥 먹다가, 술 마시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또 길거리에서 거의 모든 지인에게 고백해왔다. 저번에는 등 뒤에 “여자 좋아합니다”라고 쓰고 마로니에 공원을 활보하기까지 했다.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내가 확성기로 말하고 다니지 않아도 평범한 세계에서 내가 퀴어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니! 그 순간 마로니에 공원엔 커밍아웃한 나와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지 않은 일반인들만 있었을 뿐이다. 커밍아웃을 못 한 사람들은 커밍아웃한 나를 신기한 동물 보듯이 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이 신기했다. 노인들은 놀랍도록 무심했고, 젊은 사람들은 놀랍도록 놀라워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드러난 반쪽이 충분히 솔직했다. 이 퍼포먼스는 나도 못 잊을 경험이었지만, 나를 본 모든 사람에게도 난 평생 잊을 수 없는 퀴어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만족스럽다. 견고한 경계에 흠집을 낸 것 같아서. 이 세상이 무너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로서 그저 존재하기’는 달콤했다. 두 쪽 난 나의 세계에서 조각 같은 공간이 생겨났다. 커밍아웃했던 내 일상적인 공간들이 갈라져서 치열하게 싸우는 두 세계의 중립 지역이 되었다. 그 조각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항해를 인도하는 북두칠성과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별자리들처럼. 난 자유로워지는 법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아마 평생의 임무가 될 테지만 괜찮다. 언젠간 세계를 나누는 경계는 없어지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빛나는 별들만 남을 것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