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선진 기자 (hupfen@skkuw.com)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과학대학 학생인 나는 성대신문에 들어와 지난 학기에는 예술대학의 이야기를, 이번 학기에는 자연과학캠퍼스의 이야기를 썼다. 땡볕 아래에서 날리는 종이를 잡아 물감을 칠하고, 모니터 너머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수업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취재가 필요했다. 학우, 교강사, 학교 이곳저곳에 한 마디를 묻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나는 자꾸만 스스로의 자격을 묻게 됐다. 그리고 이번 주 기사 취재를 하던 중 ‘자과캠 이야기를 왜 인사캠 학생이 쓰느냐’는 한 교수님의 물음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내가 이 이야기를 써도 되는가.’ 

지난달 나는 최은영의 을 읽었다. 같은 학보사에서 글을 쓰던 선후배 사이인 혜진과 정윤의 이야기다. 이제 주인공 혜진은 기자가 됐고 그가 동경하던 선배 정윤은 기지촌 여성을 위한 활동가로 살아간다. 답답할 때 읽으면 환기되고 막막할 때 읽으면 힘이 되는 글을 쓰던 선배 정윤이 글쓰기를 포기하고 활동가가 됐을 때 혜진이 느낀 마음은 이렇게 표현됐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나날이 길었다.’ 주변에 멋진 이를 많이 둔 나 또한 종종 내 글쓰기에 대해 의심했기에 크게 공감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쓰던 이번 주 나의 고민과도 닮았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써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렌트는 ‘모든 것이 빌린 것(Everything is rent)’이라 말한다. 이는 가진 게 없고 집세(Rent)를 내지 못하는 청년인 주인공들을 대변하는 말장난이기도 하다. 작품 속 캐릭터는 친구의 아픔, 연인의 감정을 빌려 삶을 배우고 배우들은 캐릭터의 삶을 빌려 연기한다. 삶과 꼭 닮아 있는 이 총체적 예술은 내 두려움에 답을 쥐여준다. ‘모든 것은 빌린 것.’ 사실 ‘나’라는 세상 속에서 온전하고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몇 개 없다. 그래서 어쩌면 글쓰기는 내 세상 밖,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쓰는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실하게 알아보고,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안다면 누구나 글을 쓸 자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을 읽고 나 자신의 글쓰기를 의심했다가 렌트를 보고는 잘 빌려 쓰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지금 나의 성장을 두 작품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감사하게 빌리고, 조심히 다루어 쓴 뒤 제자리에 잘 돌려놓자. 그러면 되는 거다. 

김선진 기자 hupfen@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