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밴쿠버에서의 나날은 온갖 사건·사고의 반복이었다. 출국 전 5주 넘게 집을 찾아 헤맨 것을 시작으로 도착하자마자 교통카드를 잘못 사 100달러를 날릴 뻔하고, 사흘 만에 핸드폰을 깨 먹고, 닷새째에 yellow fever와 sugar daddy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 달 만에 교환 연장을 결심해서 비자 신청을 위해 뛰어다니고(이 연장이 나중에 또 말썽을 피웠다), 친구와 보드를 타러 갔다가 인대가 늘어나서 종합병원을 방문하고, 사고로 쇄골이 박살 난(!!) 친구를 도와 귀국시키고, 겨울비 속에서 두 번을 이사했다. 이 모든 일이 2019년 가을학기 4개월 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2020년 겨울학기에 비하면 다 별것도 아니었다.

2020년 3월 15일 금요일,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서핑하기 좋은 섬 토피노(Tofino)로 향하던 배 안에서 친구의 문자를 받았다. “도리, 나 이번 주 일요일 오전에 노르웨이로 돌아가게 됐어.” “뭐? 나 토피노에서 일요일 오후에 출발하는데!” 유럽의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자 몇몇 국가에서 자국민 귀국을 권고한 것이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친구들을 시작으로 교환학생들이 우르르 돌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끝까지 버티려던 나도 4월 3일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개월의 여행 계획과 교환 한 달을 포기한 채였다. 마스크, 일회용 장갑, 손 소독제로 무장하고 거대바이러스 취급을 받으며(이건 재미있었다) 한국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나날이었지만 출국일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교환을 하러 간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인구는 적고 하늘은 넓은 밴쿠버의 사람들은 친화력이 넘쳐난다. 마트에서 과일 하나를 사면서도 오늘 하루에 관해 이야기하고, 수업 때 옆자리에 앉으면 그냥 친구가 된다. 교환학생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새로운 곳에 새로운 경험을 하러 모인 사람들인지라 온갖 것에 열려 있었다. 13명의 사람과 9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크레페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4개국 퓨전요리를 탄생시키며 지내다 보면 이 사람을 내가 2개월 전에 알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결국 함께한 기간은 4개월이 되지 않는 친구가 대부분이었지만 헤어질 때 울음보는 기본, 지금도 주기적으로 영상통화를 할 정도로 깊은 유대감이 생겼다.

나보다 며칠 먼저 집으로 돌아가면서 선물로 (그때 정말 구하기 힘들었던) 데톨 손 소독제를 준 친구가 있다. 토피노 여행에서 처음 만나 겨우 2주를 함께한 친구였다. 그사이에 급격히 가까워져 공항까지 따라가 작별 인사를 했는데, 그 친구가 집에 도착한 후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공항에서 너와 헤어지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엄청나게 울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어떤 장소를 그곳에서 만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토피노와 밴쿠버가 네 덕분에 그만큼 다채로웠다, 나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곧 찾아갈 테니 기다리라.

국어국문학도로서 언어학이 공부하고 싶어 선택한 교환이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것은 처음 기대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그리고 그로 인해 소중한 경험을 얻었기에 나의 교환 생활은 후회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farewell 말고, 모두 다시 만날 때까지 við sjáumst!

박도리(국문 17)
박도리(국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