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여준 기자 (yjyj0120@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반도체 발전, 미래 산업 향한 첫걸음
트랜지스터 미세화가 반도체 기술 발전의 최대 관건

바야흐로 ‘규석기’ 시대, 즉 규소의 시대가 왔다. 반도체 부품의 주요 재료인 규소는 1950년대 장거리 통신부터 70년대 개인 PC 보급, 오늘날 스마트폰 보급까지 시대가 바뀌는 중요한 국면에 항상 함께했다.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자동차 등 미래 산업도 반도체 기술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반도체의 존재감은 커져 가고 있다. 현대인이 철학, 예술과 같은 필수 교양으로서 반도체 지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정확히’ 무엇인가
‘반도체’라는 단어는 흔히 반도체 물질이 들어가는 산업과 기술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하지만 과학적 의미의 반도체란 전기가 통하는 데 필요한 자유전자가 부도체보다 많고 도체보다 적은 물질이다. 전류가 잘 흐르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전자가 많아야 하는데, 반도체는 자유전자가 부도체보다 많다. 다만 반도체에 전류가 흐르는 정도는 여전히 미미하다. 따라서 자유전자를 늘려주기 위한 가공 과정이 필요하다. 이 가공은 반도체에 불순물을 주입해 이뤄지는데, 이를 도핑(doping)이라 한다. 반도체 원자들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들면 비로소 전류가 흐를 수 있게 된다. 이때 도핑에 어떤 불순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음전하를 띄는 N형 반도체가 되기도, 양전하를 띄는 P형 반도체가 되기도 한다.

반도체는 원거리 통신을 위한 전기 신호 증폭 장치로 처음 산업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1947년 벨 연구소(Nokia Bell Lab)에서는 반도체를 사용한 최초의 트랜지스터(transistor)를 발명했다. 트랜지스터라는 이름은 전류가 흐르는 특성을 나타내는 ‘transfer(이동)’와 전기 저항이 조절되는 특성을 나타내는 ‘resist(저항)’를 합친 것이다. 즉 트랜지스터는 전기 저항을 조절해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고, 전기 신호를 증폭하는 장치를 뜻한다. 한편 당시 트랜지스터는 수많은 다른 트랜지스터와 전자 부품을 연결해야 하나의 기계로 기능했다. 문제는 이 연결 부위들이 기계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5년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Fairchild)는 규소로 만든 반도체 판을 산화시키고, 이를 깎는 미세공정을 통해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킨 *집적회로를 양산하는 혁신적인 공정을 고안해냈다. 집적회로의 탄생으로 트랜지스터의 성능은 안정됐고, 전자 부품의 크기를 보다 소형화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 부품이 들어간 전자제품은 이후 점차 많아져 우리 생활 전반에 자리 잡았다.

반도체가 주도하는 현재와 미래
최초의 집적회로가 발명된 이후로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 오늘날 반도체 제품은 메모리 분야와 비메모리 분야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반도체 부품을 일컫고,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에 해당한다.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컴퓨터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CPU나 각종 센서, TV나 스마트폰 화면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압이 걸리지 않았을 때 정보가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와 그렇지 않은 비휘발성 메모리로 분류된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휘발성 메모리는 DRAM이고, 비휘발성 메모리는 NAND 플래시 메모리다. DRAM은 커패시터라고 하는 얇은 두 개의 절연체 막에 전자를 저장한다. 절연체 막이 얇아 빠르게 정보를 넣고 꺼낼 수 있지만, 전압을 끄는 순간 정보가 사라진다. 한편 NAND 플래시 메모리는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대신 두꺼운 절연체로 전자를 가두기 때문에 정보처리가 느리다. DRAM과 NAND 플래시 메모리는 컴퓨터에서 각각 CPU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작업대와 오랫동안 정보를 담고 있는 창고 역할을 한다.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중요한 부품은 연산 기능을 담당하는 CPU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며 연산과 저장의 기능을 동시에 맡는 AP(Application Processor), 흔히 그래픽 카드라 불리며 단순 연산을 잘하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 등도 대두되고 있다. 특히 GPU는 인공지능에 이미지 학습을 시키는 데 최적화된 부품으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새로이 조명 받고 있다.

반도체를 이루는 세포, MOSFET 트랜지스터
컴퓨터,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은 수십억 개의 셀(Cell), 즉 정보 저장이나 연산을 수행하는 방들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셀 안에는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따라서 반도체 부품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랜지스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트랜지스터는 MOSFET 트랜지스터다. MOSFET 트랜지스터는 수도꼭지에 비유되곤 한다. 수도꼭지는 잠겨 있을 때 물이 흐르지 않다가, 수도꼭지를 열수록 더 많은 물이 흐른다. MOSFET 트랜지스터도 비슷하다. MOSFET 트랜지스터의 경우 전압을 얼마나 세게 거느냐로 전류가 흐르는 양이 결정된다. 전자가 이동하는 길 위에 있는 게이트(gate)에 일정 정도 이상 전압을 걸어주면, 트랜지스터의 바닥에 있던 자유전자들이 올라온다. 이때 이 자유전자들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길을 형성한다. 즉 MOSFET 트랜지스터는 게이트에 거는 전압을 끄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 OFF 상태가, 전압을 켜면 전류가 흐르는 ON 상태가 된다. 우리 학교 전자전기공학부 신창환 교수는 “이처럼 트랜지스터가 ON과 OFF 상태를 오가는 것을 스위칭(switching)이라 한다”며 “이 스위칭으로 2진수를 표현해 연산을 수행한다”고 그 역할을 설명했다. 전압을 걸어 ON 상태가 돼 커패시터 안에 전자를 충전했으면 1, 그렇지 않았으면 0이 되는 식이다.

반도체 부품은 트랜지스터의 게이트 길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신 교수는 “전자를 담는 커패시터를 양동이라고 하면, 수도꼭지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가 짧아질수록 양동이에 물이 빨리 찬다”며 트랜지스터 미세화의 이점을 설명했다. 게이트의 길이가 짧아지면 전자가 이동할 거리가 줄어들고, 이는 정보 처리의 속도가 오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집적회로에 더 많은 셀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장 용량도 늘어난다.

반도체 기술이 마주한 난관
한편 게이트 길이를 줄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자가 지나는 길이 지나치게 짧아지면서 발열이 커진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발열량이 많아지면 오히려 기계의 효율이 떨어진다”며 반도체 미세화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반도체 업계는 트랜지스터 게이트 개수를 늘려왔다. 길을 짧게 하는 대신 여러 개 만듦으로써 전자가 분산되게 만들려는 의도다. 현재 대다수 트랜지스터는 게이트를 2개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를 고안해 게이트를 2개 이상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반도체가 발전해야 미래 산업도 가능해
신 교수는 “지금 CPU 안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는 대략 20억 개인데, 인간 뇌세포 개수가 100억 개 정도인 걸 생각하면 트랜지스터가 더 작아지고 개수가 많아지면 인류가 직접 신인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서 “앞으로 더 많이 쏟아져 나올 방대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반도체 부품의 뒷받침이 필수”라며 “반도체의 발전 없이는 미래 기술의 발전이 없다”고 강조했다.
 

집적회로=평평한 실리콘 판 위에 수십억 개의 전자회로가 함께 배열돼 있는 복합체.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집적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