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장현 기자 (zzang01@skkuw.com)
일러스트 |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현실과 SF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시대
웹진 등 웹기반 문학 유통에 힘입어 발전

"끊임없이 상상했다. 전염병에 걸려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을, 천체 충돌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는 끝을, 분진 나노봇에 호흡이 막혀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고통을.”
김초엽 작가의 단편 '최후의 라이오니' 속 구절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이 극도로 발전할 때 인간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이들이 있다. 최근 문학계에서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SF 문학 작가들이다. SF 문학은 어떻게 많은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빛의 속도로 떠오른 SF 문학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지난해 6월 발행된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총 15만 부 이상 판매되며 SF 문학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제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심심찮게 SF 문학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SF 문학의 판매량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SF 판매량이 1년 전 같은 기간의 약 2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SF 문학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과학문학상’, ‘SF 어워드’ 등과 같은 SF 문학상도 생겨나며 작가 발굴의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SF가 뭔데?
SF는 'Science Fiction'의 준말로, 직역하면 ‘과학소설’이다. 그러나 과거 수십 년 동안 SF는 ‘공상과학’으로 불려왔다. 이는 오역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1949년부터 발간된 미국의 잡지 <Fantasy&Science Fiction>을 일본에서 ‘공상과학소설지’로 번역했고, 이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전해져 SF 장르를 통칭하는 말로 굳어진 것이다. 이후 ‘공상’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는 문학계가 SF 문학을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장르로 인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오늘날 작가와 연구자들은 SF를 ‘공상과학’ 대신 ‘과학소설’로 번역하거나 SF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소장 김종갑) 이지용 교수는 “오역인 데다가 함의가 부정적인 단어를 굳이 계속해서 사용할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SF 문학
최초의 SF 문학으로는 1818년 발표된 프랑켄슈타인이 주로 거론된다. 이 작품은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자의 뼈로 인형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내용으로,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SF 작품으로 불리고 있다. 국내에는 1900년대 초부터 외국 SF 문학 작품의 번역본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한국 작품으로는 1929년 나온 김동인 작가의 케이(K) 박사의 연구를 시작으로 20여 년 가까이 청소년 스테디셀러를 차지했던 한낙원 작가의 금성탐험대와 문윤성 작가의 완전사회 등이 발표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까지는 문학계에서 SF 문학의 입지가 약했으며, SF 문학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일각에서는 SF 문학을 현실 도피적이고 공상적인 분야로 여기며, 기존 ‘순수문학’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는 하위문화로 인식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이 교수는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형성된 한국 문학의 장에서 ‘공상’으로 표현되던 SF 문학은 명확한 의미를 갖기 힘들었다”며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SF 문학의 과학적 상상력에 대한 재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또한 SF 문학의 독특한 유통구조도 SF 문학이 비주류로 취급받는 원인이었다. SF 문학은 1990년대 중반의 PC통신 발달에 힘입어 웹 기반 커뮤니티를 통해서 작품이 유통되는 구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는 작품 창작이 누구에게나 자유롭다는 점에서 문예지 등단 위주의 기존 문학에 비해 비권위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SF 문학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기 등 과학 기술이 일상화된 세계에 산다. 이 시대의 대중에게 SF 문학 속 세계는 동떨어진 미래처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SF 문학의 서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독자의 현실을 비춘다. 이 교수는 “우리는 지금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재정립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과거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졌던 SF 문학 서사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며 SF 문학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익숙해졌다는 점도 SF 문학의 대중화에 영향을 줬다. SF 문학의 주 유통경로였던 웹 기반 커뮤니티를 통해 소설을 접하는 것이 독자에게 더욱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웹진 <거울>을 통해 발표되는 작품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웹소설 전문 플랫폼인 △문피아 △브릿G △조아라 등에 많은 SF 문학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SF 문학 작가 중 웹 발표 지면을 경유하지 않고 온전히 종이책 출판만으로 활동을 해온 작가는 거의 없다”며 “그들이 계속해서 창작을 하고, 독자들을 만나면서 기류를 만든 기반이 인터넷 환경의 일상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가 SF 문학을 환영하는 동안, 기존의 작가들이 꾸준히 활동하며 SF 문학계의 발전을 도모한 것도 현재의 흥행을 가능케 했다. △듀나 등 1990년대 PC 통신을 통해 등장한 작가 △배명훈 등 2000년대 초반 ‘과학기술창작문예’ 출신 작가 △정세랑 등 웹진 <거울>을 통해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며 한국 SF 문학의 명맥을 이어 왔다. 이들은 작품 발표뿐만 아니라 창작 워크숍과 세미나 등 SF 문학계의 발전을 위한 활동도 계속하며 SF 문학 발전의 길을 닦았다. 

과학의 붓으로 인간을 그리다
오늘날의 SF 문학이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성’이다. 박이현(통계 16) 학우는 SF 문학을 즐겨 읽는 이유에 대해 “기술이 발전한 미래에도 사람들 간의 갈등이 보인다는 점에서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SF 문학은 인간에 방점을 찍으며 사회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는 SF 문학의 특성은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인 세계를 제시하기에 유용하다. 이러한 구조적 장점을 활용해 SF 문학은 소외자를 조명하고,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더딘 사회적·윤리적 대비를 성찰한다. SF 문학이 발휘하는 상상력의 본질은 ‘미래의 과학’이 아닌 ‘미래의 사람’을 향해 있다. 

앞으로는 어떤 미래를 그릴까 
2차 세계대전 시기의 SF 문학 작가들은 전쟁소설을 많이 발표했으며, 냉전 시기에는 주로 3차 세계대전이나 멸망을 소재로 다뤘다. 1960년대 이후에는 환경문제의 대두로 인해 *에코토피아 서사가 발달했고,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발달 이후로는 *사이버펑크를 다룬 작품이 자주 등장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SF는 당대 사회를 담아냈고, 나아가 미래를 바라봤다. 이 교수는 SF 문학의 미래에 대해 “지난 200여 년간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문제를 짚고 계속해서 그다음의 미래를 지향하게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고 그로 인한 새로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코토피아=‘환경’과 ‘이상’이 합쳐진 말로, 생태적 이상향을 뜻함.
사이버펑크=컴퓨터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는 억압적인 사회의 무법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를 뜻함.

 

김초엽 『우리가 빛의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
ⓒ알라딘 캡처

 

메리 셀리 『프랑켄슈타인』 표지.
​​​​​​​ⓒ알라딘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