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규리 기자 (kimguri21@skkuw.com)

이번 학기에 내가 맡은 기사는 총 네 개다. 이번 발간은 그중 두 번째였다. 두 번째로 맞은 신문사 학기지만 아직도 기사를 쓰는 일이 어색하다. 금요일에는 탈고해야 한다. 기사를 위한 기획 문건을 쓰는 내내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내가 주제에 관한 대표성을 갖고서 글을 쓸 자격이 되나? 그것도 학교의 이름을 내건 자리에서 말이다. 그 의구심이 기사를 준비하는 내내 나를 짓누른다. 밤을 새워서 기획문건을 쓰고 배경지식을 정리할 때에도, 신문사 사람들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때도, 인터뷰이를 컨택할 때도, 기사 본문을 쓸 때도. 매번 솔직하지 못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침대 위에서 계속 뒹굴었다. 책상 앞에서 착수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에 자문을 위해 넣은 메일에는 아직 답장이 없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게 자격이 없어서 답장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감 기한은 분 단위로 줄어갔다. 다른 전문가를 찾아야 했다. 예비 목록에 올려 둔 연구원분의 내선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다른 사람이 수화기를 들었다. 그분은 공로연수로 인해 자리에 없다며. 오늘 다섯 시에 예정되어 있던 천년식향의 전화 인터뷰 일정은 내일 대면으로 옮겨졌다. 책상에 엎드리는데, 『죽은 숙녀들의 사회』 책등의 글씨가 눈에 들었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 작가인 제사 크리스핀처럼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다. 혼자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곳에서.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흔적도 더듬고 싶었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래드클리프 홀, 게오르크 트라클. 그렇다면 영어를 구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독일어도. 

다음 날 다섯 시에 천년식향이 있는 서초동으로 갔다. 인터뷰이 측이 바뀐 일정에 난색을 보이진 않을까 밤새워 뒤척였다. 다행히도 천년식향 부설 sex&steak 연구소 소장님이 환대해주셨다. 뒤이어 쉐프님이 오셨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트북을 열어 미리 준비해둔 질문지 파일을 열었는데, 곧 준비해온 질문의 순서를 잊고 눈에 잡히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긴장하면 그랬다. 인터뷰이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반문했을 때, 부끄러움이 확 밀려들었다. 내가 외국어로 더듬더듬 내뱉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인터뷰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쉐프님이 은근하게 웃으셨다. 직접 먹어봐야 진솔한 글을 쓸 수 있다면서. 주방이 분주해졌다. 예쁜 접시에 음식이 담겨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나는 쉐프님이 디너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섹스 앤 스테이크’를 먹어봤다. 여덟 시간의 공복 이후 먹는 첫 식사이기도 했다. 매콤하고 달달한 소스가 입안에 확 퍼지는데, 정말 눈이 뜨였다. 어쩌면 외국, 내가 『죽은 숙녀들의 사회』를 보며 상상해봤던 여행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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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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