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한 수 두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바둑이죠”
“한 수 한 수 두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바둑이죠”
  • 이은진 기자
  • 승인 2020.10.12 17:31
  • 호수 16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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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I 옥하늘 기자 sandra0129@
사진 I 옥하늘 기자 sandra0129@

“세상에 노력 없이 되는 건 없어요.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바둑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바둑은 차근차근 배워가다 보면 그 깊이를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평생 바둑을 바라보며 살아온 김효정(한문 01) 동문을 그녀의 일터, ‘K바둑’ 방송국에서 만났다.

대학은 내 세상을 넓혀준 은인
더 많은 이들에게 바둑을 알리는 것이 목표


바둑밖에 몰랐던 어린 시절
김 동문은 8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바둑을 시작했죠.” 그 덕에 어렸을 때부터 김 동문의 꿈은 항상 프로바둑기사였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바둑만을 바라봤던 김 동문은 중학교 2학년 때 학업과 바둑의 병행이 어려워지자 바둑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과 수업을 듣거나 수학여행처럼 고등학교 때만 누릴 수 있는 기억이 없어요”라며 김 동문은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후 김 동문은 16살에 프로 기사로 선발됐다. 당시 여자 프로 기사는 1년에 2명만 뽑았기 때문에 프로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프로 기사가 되고 나선 홀가분했어요. 놀아도 되겠구나 싶었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후 김 동문은 19살에 바둑 방송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다 보니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검정고시를 보고 우리 학교 인문과학계열에 입학하게 됐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대학 생활
김 동문은 원래 철학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성적에 맞춰 한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의외로 한문학과는 그의 적성에 잘 맞았다. “한문학에서 다루는 글,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18~19세기 조선 시대를 살던 선인들의 글귀들이 너무 멋있고 와닿는 것이 많더라고요.” 그는 바둑 관련 방송 활동과 시합을 병행하면서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교수님들이 수업 후 연습장에다가 원문을 쓰는 과제를 주곤 하셨어요. 다음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제출하면 도장을 찍어주셨어요. 잘 쓰면 도장 3개, 못 쓰면 한두 개를 찍어주셨는데 교수님이 두 개 찍어주면 괜한 욕심이 생겨서 더 열심히 썼죠. 정말 열심히 써서 도장 3개를 받아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죠. 그래도 항상 2개 이상은 받았던 것 같아요” (웃음)

활동한 동아리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당시에 테니스 동아리에 참가했다고 답했다. 그는 친구들과 대학교 오픈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동아리 내 여자 중에선 제가 제일 테니스를 잘 쳤어요. 복식으로 나가서 입상도 했어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테니스를 칠 정도로 정말 좋아했답니다.” 그는 테니스를 치고 친구들과 술 한 잔하는 것이 당시의 소소한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교 내 바둑 동아리 ‘기우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기우회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생활 초반에는 바둑 동아리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를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르게 있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우연히 기우회 회장과 수업을 같이 듣게 됐고, 회장의 권유로 결국 기우회에 동참하게 됐다고 한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동아리이다 보니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아직도 늘 모여서 바둑을 두곤 해요. 실제로 작년에 대학 동문전에서 우리 학교 기우회가 우승하기도 했어요”라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김 동문은 대학 생활 중 랩에도 도전했다고 고백했다. 한평생 바둑만 둬왔던 그녀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엔 랩이 유행이었어요. 친한 선배가 랩을 잘해서 종종 공연을 하곤 했어요. 저는 랩을 하나도 못 했는데도 공연에 참여했어요. 제 인생에 대한 자작 랩이었는데 공연을 하다 가사를 까먹어서 선배들이 무대에서 급하게 수습해줬던 게 기억에 남네요”라며 웃었다.

그는 최근에 중앙동아리 문화가 침체해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학부 내 사람들이 모이는 학회 활동도 중요하긴 하지만, 중앙동아리 활동도 그에 못지않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앙동아리에는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인맥도 넓힐 수 있고, 보는 시야도 넓어질 수 있는데 점점 위축된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안타까워요.”

김 동문에게 대학 생활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됐다. “제게 있어 대학은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대피처이자 제 세상을 넓혀준 은인이기도 해요. 저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중고등학교 때 누리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누릴 수 있었고, 그 덕에 제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생으로서의 도전
김 동문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바둑계에 중요한 사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묻혀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주변의 만류에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는 대학원에 다니며 다른 대학 학우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대학원에선 교차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서울대, 고려대 친구들과 함께하곤 했어요. 다양한 곳에서 재밌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바둑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김 동문은 대학원 졸업을 위한 논문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석사 논문을 쓰는 데에 자그마치 10년이나 걸렸다고 허심탄회하게 고백했다. “사실 중간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논문을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지난 6월에 석사 논문을 제출하고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조선 후기에 바둑을 뒀던 기사들의 모습과 당시의 바둑에 관한 글들에 대해 논문을 썼다고 한다. 그는 “바둑계에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아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바둑에 관한 역사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글을 더 써보고 싶어요”라며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항상 ‘바둑인’
김 동문은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중에도 항상 바둑과 함께였다. 그는 우리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일반인들에게 바둑을 알리고자 그에 관한 방송을 출연하곤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바둑인으로서 바둑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왔어요”라며 바둑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프로기사회에서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프로기사회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프로기사회 회장직은 대부분 50~60대 남성이 맡아왔다. 하지만 당시 바둑계가 전반적으로 침체해 있었고, 바둑계의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회장직에 도전해 당당히 당선됐다.

처음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프로기사회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속해있어 세대 간격도 크고, 수입들이 각자 달라서 모두의 의견을 취합하기 힘들었어요. 종종 어리다고 무시하는 어르신들도 있었죠.”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김 동문은 머리를 짧게 자를 정도로 각오를 다지며 멋지게 임기를 잘 마쳤다. 다만 그는 지금 되돌아서 생각해봤을 때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후회를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회장직을 수행하며 많이 배웠다고 한다. 그는 “회장직을 통해 바둑 자체를 깊이 있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내가 바둑계를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기회가 됐어요”라며 회장직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또한 김 동문은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와의 대국을 해설하기도 했다. “사실 대국 전까지만 해도 AI는 인간한테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무지한 거였어요. 생방송 중에 이세돌 기사가 패배하자 해설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알파고의 승리는 프로 기사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죠.” 그는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와의 대국이 AI가 인간을 넘는 시대임을 체감하게 해줬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알파고와의 경기 후엔 우리가 바둑이 갖는 고유의 가치가 있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승패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둑이 갖는 고유의
깊이와 의미를 더 발견해내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현재 그는 ‘K바둑’에서 방송사업국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업국 이사로서 바둑에 관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다양한 시합과 행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채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모습의 바둑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바둑을 배우기 위해 서양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외국인들을 촬영해 ‘푸른 눈의 승부사’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는 이세돌 기사의 은퇴 경기같이 의미 있는 행사나 이벤트 경기도 개최해 대중들에게 바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여자 바둑 리그가 개최되는 시기에 ‘부안 곰소소금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년 전 바둑 관련 행사를 통해 부안군청과 맺은 인연이 계속 이어져 2015년부터 부안군청의 요청으로 여성팀의 감독을 맡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팀에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선수들이 저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다 보니 저를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서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하지만 그는 감독으로서 느끼는 뿌듯함이 더 크다고 전했다. “작년에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올해는 준우승을 한 덕에 얼마 전에 군수님을 만나기도 했어요. 그리고 대회 우승 상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할 때마다 정말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둑인으로서 김 동문이 갖는 바람
김 동문은 바둑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길 소망했다. 그는 “바둑은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바둑을 통해 인내심을 기를 수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바둑이 아이들의 내재된 공격성을 해소하는 치유의 도구로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라며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바둑은 아무것도 없는 바둑판에서 흑과 백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기에 엄청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종목이에요. 요즘 교육은 창의력이 부족한 주입식 교육 위주이기 때문에 바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동문은 바둑계에서 바둑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바둑을 보여주고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바둑에 입문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바둑을 두는 것처럼 매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
김 동문은 삶의 좌우명을 바둑에 비유했다. “한 수 한 수 두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 것이 바둑이에요. 바둑을 두는 것처럼 저 또한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이어 그는 바둑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에게 응원을 건네기도 했다. “세상에 노력 없이 되는 건 없어요.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바둑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바둑은 차근차근 배워가다 보면 그 깊이를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후배들에게 대학 생활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순간순간을 최대한 즐기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대학 생활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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