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선정 기자 (sunxxy@skkuw.com)

미각을 자극하는 감칠맛과 지방의 풍미 
동물복지 농장과 대체육도 새롭게 떠올라

세종실록에는 고기반찬이 없으면 수라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세종대왕의 일화가 나온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꽤 많은 세종대왕들이 보인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매달 신메뉴가 쏟아져 나오고 거리로 나가면 고깃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기 문화는 어떨까? 우리는 왜 그토록 고기를 좋아할까? 

우리는 고기를 어떻게 먹어 왔을까
육식은 인류 역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구석기 시대에 인류는 주로 자연 채집 가능한 식물의 열매, 잎, 뿌리를 섭취했다. 이후 농업과 목축업의 시작으로 인류의 주식 섭취 형태는 수렵 생활에서 작물 재배로 바뀌었다. 그러다 불의 발견으로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류의 진화에 큰 기여를 했다. 연구자들은 고열량 동물성 단백질로 에너지를 얻은 인류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져 크기가 커진 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구석기 시대 육식의 흔적은 큰 동물의 포획을 염원하며 동굴에 그려놓은 벽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선사인이 고래와 사슴 등을 사냥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위 계급을 중심으로 고기 섭취가 이뤄졌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소의 도축을 금지하는 ‘우금령’으로 육식 문화가 잠시 주춤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는 살생을 금하는 계율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쇠고기 섭취를 제한하지 않으면 농사에 지을 소가 부족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치맥’과 삼겹살
“고기반찬이 없으니 섭섭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늘날 식탁에 고기가 오르는 일은 흔해졌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엔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자주 먹는 것이 어려웠다. 대신 닭고기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줬다. 1970년대 초반에는 닭을 통째로 조리하는 전기구이 통닭이 성행했다. 1980년대 초 KFC 매장이 국내에 입점하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닭을 조각내 튀겨먹는 방식이 유행했다. 이후 국내업체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고추장 △마늘 △물엿 등을 넣은 양념치킨을 개발하며 소비층을 적극적으로 넓혀갔다. 오늘날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다양한 소스나 여러 향이 나는 시즈닝을 뿌린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K-치킨’이란 명칭으로 외국인의 인기까지 끌고 있다. 

외식 메뉴로는 돼지고기가 사랑받는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회장 김용철)에서 발표한 ‘국내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에 따르면 연간 섭취되는 돼지고기는 27㎏으로 닭고기, 쇠고기의 약 2배가량이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선호가 언제부터인지 규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돼지고기 섭취의 대표 방식인 삼겹살 문화를 살펴보면 꾸준했던 인기 비결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정부는 쇠고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돼지고기 소비 육성책을 썼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화로구이 식당이 보급됐다. 고가의 쇠고기 대신 저렴한 삼겹살이 단골 회식 메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셰프가 조리하는 스테이크를 먹거나 두꺼운 고기를 그릴에 구워 먹는 모습은 서양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화로구이 불판 앞에서 조각낸 고기를 바로 구워 먹는 ‘코리안 바비큐’ 스타일은 우리나라만의 매력이다. 상추, 깻잎 등과 쌈을 싸서 먹거나 마늘과 쌈장과 곁들여 먹는 문화도 독창적인 고기 문화다. 

저렴하고 기름지다는 삼겹살의 편견을 깨는 ‘프리미엄’ 생삼겹살을 앞세우는 가게도 늘고 있다. 숙성을 통해 고기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담백한 풍미를 살려 특유의 잡내를 제거하기도 한다. 또한 종업원이 손님에게 직접 고기를 구워주거나 각 지역의 전통 젓갈과 김치를 제공해 차별화를 두는 가게도 있다. 

식욕을 돋구는 고기 맛의 비밀
고기는 특유의 ‘감칠맛’으로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다. 이 용어는 1985년 과학 용어로 공인됐는데,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을 의미한다. 채소나 콩 같은 식물성 식품에도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분자가 있다. 그러나 동물의 근육을 움직이는 성분이 감칠맛을 최대로 끌어올려 대부분 잘 구운 고기를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감칠맛을 잘 살리려는 요리 방식이 오늘날 고깃집에서 볼 수 있는 ‘숙성육’ 방식이다. 

또 고기에 포함된 지방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동물을 살찌우면 지방이 피하나 내장 주위에 축적되며 근육 사이에도 지방조직이 끼는데, 이를 소위 마블링이라 한다. 이때 지방이 얼마나 균일하고 적절히 끼어있는지가 좋은 고기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지방이 풍부한 고기를 열로 익히면 근섬유 덩어리가 쉽게 분해돼 고기의 부드러운 식감이 극대화된다. 또한 지방은 열전도가 잘 되지 않아 고기를 익힐 때 내부 수분 증발을 억제해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슬기로운 육식생활, 가능할까            
고기는 특유의 맛으로 오랫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환경 파괴 문제나 잔인한 축산, 도살 방식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지속 가능한 미래 환경과 동물 생명 윤리를 생각하며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육류를 전혀 먹지 않고 식물성 식품만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는 입장도 있다. 경상대 축산학과 주선태 교수는 “서구권 나라처럼 1인당 육류 섭취가 지나치게 많아 과다하게 동물성 지방을 먹게 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60세 이상 중장년층이나 성장기 어린이들의 육류섭취량은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고기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근육 단백질과 아미노산의 조성이 거의 같아 영양학적으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윤리적 문제와 고기 섭취의 필요성이 충돌하는 것의 대안으로는 대체축산물 산업도 떠오르고 있다.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콩고기나 비건치즈 등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식문화 운동 중 하나인 ‘슬로우 푸드’ 운동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어떻게 오는지 시간과 정성을 다해 생각하는 것이다. ‘슬로우 푸드’ 철학의 일환으로 가축을 방임해서 키우거나 친환경 사료를 먹여 공정한 도축 과정을 거치는 동물복지 축산농장에 관심을 가지며 윤리적 육식을 실천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이 공장식 축산과 구별되는 기준은 △거세나 꼬리 자르기 등의 신체 훼손 △성장촉진제나 호르몬제 등의 약물 사용 △케이지 감금 틀 사용 여부 등이 있다. 이에 대해 주 교수는 “바람직한 대안이지만 고가의 가격으로 소비자의 부담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값싼 공장식 축산 수입육 앞에서 매번 고가의 동물복지 축산농장의 고기를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식도락의 즐거움은 우리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윤리적인 신념으로 이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허남결 교수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혹은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