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규리 기자 (kimguri21@skkuw.com)

보이지 않는 감정을 파고들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더스코어 
한국 영화음악의 실정은 전반적으로 열악해 ··· 저작권 정비 필요

지난 7월 타계한 엔니오 모리코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등 다양한 영화에서 음악을 작곡하며 단순한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의 음악은 전 세계에 감동을 선사했고, 스크린에 심층적인 깊이를 부여했다. 영화음악은 어떤 기능이 있으며, 관객에게 어떻게 울림을 주는 걸까?

화면 아래 함께하는 음악 
영화 스크린 이면에선 다양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격발음이나 물소리와 같은 효과음부터 시작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장식하는 피아노 선율까지 다양한 종류의 소리가 존재한다. 영화에서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흔히 OST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OST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riginal Soundtrack)’의 약자로 보통 영화에서 사용된 모든 사운드를 녹음한 것을 총칭한다. 

영화 음악은 음악이 비롯되는 지점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소스 음악과 언더스코어다. 소스 음악은 영화 속 화면에서 직접 연주되는 곡이나 자료 음악을 의미한다. 영화 <이다>의 한 장면에서 레코드판은 모차르트의 41번 협주곡을 재생하는데, 이는 소스 음악의 대표적인 예시다. 언더스코어는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작곡된 것으로 외부에서 첨가됐다. 영화 <죠스>에서 식인 상어가 등장해 장면에서 긴장감이 고조될 때 관악기를 활용한 것이 언더스코어의 예시에 속한다. 

무성 영화 시절부터 음악은 영화와 함께했다.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은 영상 자체에 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상영할 때 프로젝터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가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연주자에게 피아노를 치게 했다. 그렇게 다양한 극장에서 피아노나 오르간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발성 영화 시대에 들어서며 막스 스타이너는 <킹콩(1933)>에서 상황에 걸맞은 음악을 작곡해 배치했다. 위협적인 존재인 킹콩이 뉴욕 시내로 돌진하는 장면에서 오케스트라가 긴장감을 고조하는 곡을 연주한다. 이것이 화제가 되며 장면과 적합하도록 진행되는 양상을 띤 언더스코어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감정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인 프로도가 여정을 떠나기 전, 평화로운 고향에서 머물 때 부드러운 목관 악기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후 프로도가 여정을 마치고 그의 삼촌과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웅장한 형태로 변주한 같은 선율이 다시 관객에게 제시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쳐 음악은 프로도가 일궈낸 ‘평화’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화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아래에 깔린 음악은 전체적인 흐름을 뒷받침해준다. 영화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제를 모티프 선율로 만들고 이를 변주하는 방식이다. 

언더스코어는 관객들이 특정 장면에 이입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등장인물의 내면 감정을 대사 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 학교 영상학과 김태훈 교수는 “음악은 영상에서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정보에서 그치지 않고 감정적으로 파고든다”고 설명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는 비브라토 효과를 활용해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제시한다. 비브라토는 현악기 연주에서 음을 떨리게 만드는 기법이다. 주인공은 지붕에서 낙사한 동료 경찰관을 보고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인물로, 높은 곳에서 심적 혼란을 겪는다. 음을 흔들리게 하는 기법은 주인공이 높은 곳에서 느끼는 내면의 공포와 유사하게 표현된다. 

스파팅 세션, 음악을 장면에 녹여내다
그렇다면 언더스코어는 어떻게 탄생할까. 먼저, 시나리오를 받은 작곡가는 일종의 스케치를 한다. <침입자>, <기억의 밤>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김 교수는 이 과정에 대해 “직접 촬영 현장을 방문해 배우의 연기를 보며 인물의 성향을 파악하고 스케치업을 한다”며 “현장의 스탭과도 작품을 대하는 관점을 묻는 등 공통분모를 찾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촬영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스파팅 세션이 시작된다. 스파팅(spotting)은 영화 장면에서 음악이 삽입될 시점을 잡고, 작곡가와 감독 등이 모여 음악이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협의하는 과정이다. 화면을 보며 각 장면을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한다. 이때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에 김 교수는 “사람들이 악기에 대해 가진 이미지를 활용해 장면을 극대화하고 몰입을 증진한다”며 “금관악기는 로마 시대부터 전쟁 때 사용돼 군대, 승리 등의 고전적인 관념을 띠고 피아노는 관객의 섬세한 감정을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회의를 마치면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스파팅 노트를 작성하는데, 스파팅 노트는 5W 원칙을 통해 구성된다. △누가 연주할 것인지(Who) △어디에 음악이 필요한지(Where) △어떤 장르의 음악을 구성할 것인지(What) △왜 음악이 필요한지(Why) △음악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When)를 기록해두는 것이다. 스파팅 세션을 거친 후에 작곡가는 본격적으로 작곡에 착수한다. 

보다 나은 영화음악 산업을 위하여 
국내에서 영화음악 산업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997년 영화 <접속>의 OST가 약 67만 장 팔리면서다. 실제로 음악과 영화는 상호 보완적인 구조를 갖는다. 영화에서의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수익도 이어지는 흐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상을 환기할 수 있게 한다. 김현정(영상 18) 학우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좋은 영화를 보고 여운이 남을 때 음악을 들으며 집까지 걸어가곤 한다”며 영화음악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혔다. 

해외에서는 영화음악 산업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 언더스코어의 작업 기간은 *프리 프로덕션때부터 시작하며 작업 기간을 충분히 할당한다. 작곡가는 악보에 작곡한 일시를 적고 사전에 우체국에 보내 최초 작업자로서의 저작권을 인정받기도 한다. 독일 영화음악작곡가협회 데프콤(Defkom)에는 약 140명에 달하는 작곡가들이 등록돼 있다. 이밖에도 시상식을 열어 대중들에게 영화음악에 관한 인식을 고취하고, 관련 법안이나 제도를 위해 정치적 움직임도 갖는다. 그러나 한국은 영화음악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이 열악한 실정이다. 김 교수는 “언더스코어는 따로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상 그 자체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더러 음반을 따로 발매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더 스코어링이 영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 
 

프리 프로덕션=프리 프로덕션은 영화의 개발 단계가 끝나고 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착수하면서 준비해야 할 일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