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돌아보면 우리는 평균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평균신장, 평균체중, 평균소득부터 평균성적, 평균수명, 평균지능지수, 평균결혼연령, 평균자녀수, 평균수면시간, 평균식사시간, 평균출퇴근시간, 평균이직횟수, 평균근속연수, 평균은퇴연령... 마치 인간의 인생을 모조리 숫자로 분해해버릴듯 무수히 많은 평균들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우리의 머리속을 채운다. 현대국가의 정치와 행정조직은 어떤 의미에서 이 수많은 평균들을 좀더 잘 찾아내고 더 자주, 더 많이 쏟아내기 위한 조직이다. 

평균에 대해 이렇게 쏟아지는 관심은 정치, 행정, 경제정책수립이나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필요 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아마 어쩌면 사람들은 평균이 주는 안정감을 즐기고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이 평균의 범위에 속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은 안도감을 갖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월수입이 평균에 도달한다는 사실로부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적어도 루저는 아니라 안도감을 얻는다. 비단 수입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서도 평균을 넘어서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성취를 측정하는 지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평균이 한 사회 전체를, 인간의 삶 전부를 지배할 때 개성은 사라진다. 무엇인가를 숫자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균질적인 비교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숫자로 바꿔 계량화함으로써 우리가 알게되는 것도 많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매일 쏟아지는 평균이란 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조각조각 나누어 수량화한 다음, 이를 전문적인 방법을 통해 가공하여 얻은 것이다. 평균은 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어떤 측면을 특수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평균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는 것이 어리석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로부터 받는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하는 것이다. 미래 기술과 사회의 변화로 말미암아 분명히 어떤 일자리는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할 것이며 어떤 일자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삶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정치학 교수인 나에게 학생들이 그러한 정보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흔히 호소하는 문제는 결정장애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이것도 불안하고 저것도 불안하고 하는 식의 결정장애 말이다. 적지 않은 상담을 한 후 내가 내린 결론은 결정장애의 상당부분이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온 평균에의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직업이나 삶의 경로가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틀을 벗어날 때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러한 불안이 지나칠 때 발생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닫아버리고 잠재력을 눌러버리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조언은 이렇다.  우선 종이 한장을 꺼내서 무슨 이유에서든 끌리는 직업을 모두 써본다, 그 다음 거기에서 덜 원하는 직업부터 지워나간다. 의외로 자신이 다양한 이유로 이런 저런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렇게 지워나아가다 보면 더 지울 수 없는 지점이 나온다. 남은 직업들을 앞에 두고 자신이 각 직업으로부터 무엇을 바라는지, 예를 들어 부인지, 명예인지, 사회적 기여인지 적어본다 (너무 자세히 쓸 필요는 없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떤 공통분모들이 발견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종종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가치, 자신의 욕망,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상담을 한 학생들이 반드시 종이위에 남은 직업 중 하나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학생들이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고 이해할 때 행복을 느낀다. 직업의 선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지는 것 말이다. 사족이지만, 이 글을 쓰고 나니 나는 참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글 읽고 쓰고, 가르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