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유림 기자 (yu00th@skkuw.com)

연명의료 중단 의사 밝히고 영정사진 촬영하기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나의 인생 되돌아보기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동서고금의 죽음을 향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젊음은 생명의 담보가 아니기에 기자 또한 죽음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지난 5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겪게 될 임종 단계를 가정해 *연명의료에 관한 자신의 의향을 미리 밝혀두는 문서다. 작성 후 나중에 임종 과정에서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치료에 의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연명의료가 중단된다. 만약 환자의 사전 동의 문서가 없고 의사소통도 불가한 상태라면, 평소 환자 의사를 알고 있는 2인 이상의 가족이 일관되게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의 합의를 통해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기자에게는 오랜 시간 힘들게 연명 의료를 받았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죽음을 온전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사이트에서 등록 가능 기관을 확인해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찾아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상담실로 들어가자 담당자는 젊은 사람이 온 적은 별로 없었다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는 “주로 노인들이 방문하거나 가까운 사람이 고통스럽게 연명 의료를 받는 걸 보고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소개했다. 호스피스 선택 여부부터 문서의 효력과 철회 등에 관한 설명이 끝난 후 의향서를 작성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의향서 작성에 앞서 머뭇거리자 그는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선택을 변경할 수 있다”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현재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이를 존중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명을 끝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영정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시스템에 등록됐다는 문자가 오자 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혜화역 근처에 위치한 ‘메모리포유’ 스튜디오에서는 ‘젊은 날의 초상: 내 인생의 임시저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어린 날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 주기로 영정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붙은 수많은 청년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적은 흑판을 들고 있었다. 그중 “내가 태어나던 날 모두는 웃었고 나는 울었지만, 내가 죽는 날 모두는 울고 나는 웃는다”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스튜디오의 이슬기 실장은 “납골당에 갔을 때 어르신들은 준비된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의 경우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나 단체 사진에서 오려낸 사진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까웠다”며 “젊었을 때 사람들에게 남길 말과 함께 영정사진을 찍어두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60분의 예약시간 중 실제로 촬영한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촬영 전, 이 실장과 대화하며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고 타인의 사연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삶을 끝내기 전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던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얘기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계산은 일 년 뒤에 하라고 말하자 학생이 펑펑 울며 자신이 그럼 어떻게 죽을 수 있겠냐며 돌아갔다”며 “그 손님에게 종종 연락이 오면 그때 생각으로 뭉클해진다”고 덧붙였다. 대화를 마친 그는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지를 놓고 자리를 떴다. 조용한 공간에 홀로 남아 살아오며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과 아쉬웠던 일, 나를 찾아올 누군가에게 전할 한 마디 등을 질문지에 작성했다. 그리고 흑판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이 시작되고 그는 커튼 뒤에서 ‘이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앞에 놓인 거울을 마주하니 행복했던 일과 미안했던 일을 떠올리는 표정이 보였다. 감정을 추스르고 흑판을 든 채 영정사진을 찍었다. 인화된 사진을 보며 집으로 가는 길, 죽음을 생각하며 떠올렸던 사람들과 추억들을 되뇌며 내 인생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는 영정사진들이 걸려 있다.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는 영정사진들이 걸려 있다.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
지난 인생을 묻는 질문지에 답을 한 후 마지막 메시지를 담은 흑판을 들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지난 인생을 묻는 질문지에 답을 한 후 마지막 메시지를 담은 흑판을 들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
사진 I 이지원 기자 ljw01@

 

연명의료=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는 없이 임종 과정만 늘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