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마침표를 고민하다
웰다잉, 삶의 마침표를 고민하다
  • 황유림 기자
  • 승인 2020.11.09 17:43
  • 호수 16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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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잘 죽어가는 것이 곧 잘 살아가는 것

아이부터 노인까지 죽음 교육 필요해

 

어렸을 때 다들 궁금해하지 않았던가? 왜 엘리베이터의 4층만 F로 표시돼있는지. 死(죽을 사)가 연상되기 때문이란 설명을 듣고 아마 수긍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두려워 언급 자체를 꺼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기에 익숙한 존재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처럼, 우리는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진정한 삶과 마주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무지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신체의 고통은 죽음을 더욱 무자비한 것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자아의 상실과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죽음의 순간을 슬프고 고독하게 한다. 죽음의 공포는 인류에게 보편적이지만, 각국의 문화에 따라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특히 종교는 그 나라의 죽음관을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죽음관에서 기독교를, 일본의 죽음관에서 불교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사회의 보편적인 죽음의 의미는 한 사회가 지녀온 종교의 죽음관을 반영한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구한말 한국문화를 연구하며 저서 『대한제국멸망사』에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고, 고난을 당할 때는 영혼숭배자”라고 분석했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전통적인 죽음관에 불교의 윤회 사상과 현세를 중시하는 유교의 가르침이 더해졌다. 20세기 이후 기독교도 등장하며 여러 종교의 영향으로 복합적인 우리나라의 죽음관을 형성했다. 

현재는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종교 중심의 죽음관이 변화하며 죽음을 접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1970~80년에는 임종과 장례가 주로 집에서 이뤄졌지만, 현재는 병원과 상조회사의 형식화된 장례 절차에 따른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윤득형 회장은 “핵가족화 및 도시화로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아져 죽음을 자신과는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에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웰다잉 
요즘에는 필연적인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지 고민하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 중이다. 웰다잉은 좋은 죽음을 지향해 품위 있게 죽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죽음이 자신에게도 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앞으로의 생을 계획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용어를 ‘웰다잉’으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다. 웰다잉에 대한 논의는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의 평소 의사와 가족의 동의에 따라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을 존엄사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2018년 2월에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웰다잉법이 실시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건양대 웰다잉 융합연구 교육센터 김광환 소장은 “인간은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지만 죽어가는 모습이나 죽음을 향한 두려움은 같지 않다”며 “이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의 끝을 미리 돌아보며 현재의 삶을 꾸리는 것이기에 웰다잉 준비는 곧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 그 자체를 의미한다.


웰빙을 위한 웰다잉, 삶을 위한 죽음 준비 
웰다잉 문화는 노년층이 모이는 노인대학, 복지관 등에서 실시되는 죽음 교육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존엄사, 호스피스 등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정립해 남은 노후를 계획한다는 취지다. 그 외에도 유서 쓰기나 입관 체험 등을 통해 웰다잉 준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넓은 연령층을 향해 확장하고 있다.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신수민(사복 19) 학우는 “유서를 쓰며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경험이 됐다”고 전했다.

한편 ‘잘’ 죽을 권리 이전에 ‘죽을 권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임종 시기에 연명의료만 계속되는 상황을 염두에 둬 효과 없는 치료를 거부할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임종 직전의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두면 중단 절차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다. 또한 ‘사전장례의향서’를 통해 장례 방식과 절차를 미리 결정할 수 있으며 살아 있을 때 작별인사를 하는 생전 장례식을 치를 수도 있다. 이러한 결정을 포함해 장기 기증 희망 여부, 장묘 방법 등의 구체적 사안을 함께 계획하는 ‘웰다잉 플래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웰다잉 문화가 젊은 층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웰다잉시민운동(이사장 차흥봉) 서인애 팀장은 “진행 중인 시니어 토크 콘서트나 웰다잉 포럼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있다”면서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하는 등 청년들에게 웰다잉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건양대 및 일부 대학에서 실시한 웰다잉 교육은 학생들이 죽음 준비가 노인과 환자보다 오히려 청소년과 청년에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였다”며 “이러한 긍정적 인식의 전환은 자살 예방 효과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웰다잉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우리 같이 죽음에 관해 얘기해봅시다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직은 생소한 우리나라에 반해 해외에서는 죽음학을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죽음학을 대학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청소년들에게도 죽음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일본의 경우 생사학 연구의 대가 알폰스 데켄 교수의 영향으로 각종 죽음준비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또한 영국은 매년 5월에 ‘죽음 알림 주간’을 열어 어린아이와 어른들이 같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처럼 개방적으로 죽음 담론을 이어가며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죽음 교육의 목적이다. 

윤 회장은 “웰다잉 교육은 자신의 삶을 깊게 성찰할 수 있게 한다”며 “죽기 전에 후회할 일들을 지금 내 앞으로 가져와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 수 있게 돕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소장은 “높은 자살률, 노인 인구의 증가와 고독사 등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를 본다면 초중고에서부터 대학생까지 웰다잉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레프 톨스토이는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시도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이상 악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응시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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