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작년 말에서 올해 초 사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보고되고 전세계로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감염되고, 고통 받고, 죽었다. 다양한 루머들이 쏟아졌고, 일부 지역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었고, 국가 간 책임 돌리기로 분쟁이 발생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전염병 확산을 예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동을 제한하면서 자유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감염자의 이동 경로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사생활 침해에 관한 논란도 일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를 잠재적 감염자로 경계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정부의 초기 대응으로 확진자 수가 상당히 줄었고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최근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의 확산이 줄어들기는커녕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는 거대한 동시에 필연적인 변화를 맞았다. 그 흔적은 성대신문 1670호에서도 눈에 띈다. 총학의 후보자 등록 관련 논란, ‘이루리’가 달성하지 못했던 공약들, 교내 확진자 발생, 온라인 수업과 학우들의 불편·불만사항,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 기사들에 관한 기사 등 코로나의 흔적이 가득하다. 문화면에 있는 죽음에 관한 논의들은 코로나19에 관한 직·간접적인 언급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더욱 떠올리게 한다. 현대인들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겪을 일이 적다. 도시화 및 핵가족화로 인해 가까운 이가 죽음에 이르는 일이 줄었고, 장례 절차의 대부분을 병원과 상조회사에 맡기기 때문에 시신을 직접 대할 일도 적어졌다. 전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금 죽음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향하는 종착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자기’를 찾는 방법으로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봄(da Vorlaufen zum TOde)’ 제안하기도 한다.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봄은 비본래적 존재에서처럼 (죽음의) 넘어설 수 없음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때만이 우연히 들이닥치는 여러 가능성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넘어 설 수 없는 최후의 가능성 앞에 잇는 여러 현실적 가능성들을 이해하고 선택하게 된다. 이 앞질러 달려감이 실존의 극단적 가능성으로의 자신의 과제를 열어 보이며, 그때그때에 이미 실현된 실존으로 굳어버린 모든 태도를 부숴버린다. -하이데거《존재와 시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고유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에 휩싸여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항상 죽음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코로나19 따위는 무시하고 생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또한 염두에 두고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 보자. 전세계가 팬데믹으로 신음하고 있는 와중,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자. 진정한 자기를 찾자. 코로나로 가득한, 코로나로 인해 변화한 사회를, 생활을 직시하고 그 속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투사하자.
 

김준수(국문 19)
김준수(국문 19)